[신윤창소설] 인식의 싸움 85. 마케팅 팀장이 되다(13)

한 달이 지나 드디어 M&C색조 디자인이 나왔다. 처음 봤었던 스케치와는 달리 기대 이상으로 매우 감각적인 실버 메탈릭 디자인이 나왔다. 목업은 원형과 정사각형으로 두 가지 안이 나왔는데, 신팀장은 원형이 더욱 슬림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매우 마음에 들었지만, TFT 멤버들의 의견은 각각 반으로 갈라졌다. 이렇게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신팀장은 긴급 제안을 하였다.
      
 “자, 우리 이렇게 합시다. 우리끼리 떠들어대지 말고 소비자 조사를 해봅시다. 서대리 목업은 몇 개씩 만들었죠?”
 “시간에 쫒겨 이거 각 한 개씩 만드는 것도 간신히 했어요.”
 “한 세트만 더 빨리 만들 수 있나요?”
 “2주는 시간을 주셔야 합니다. 더 당길 수는 없어요.”
        
 “그러기엔 우리가 너무 급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사각형 디자인 한 세트와 원형 디자인 한 세트를 각각 하드보드 지에 붙여서 2인1조로 해서 2개 조가 매일 거리에 나갑시다. 내일 한 조는 오전에 패션거리인 압구정과 강남으로 가고, 한 조는 대학가를 대표하는 신촌과 홍대로 갑니다. 그리고 각 조는 오후에 지역을 바꿔 각 지역에서 최소한 100명, 두 지역에서 총 200명에게 선호도 조사를 하십시오. 또 다음 날 한 조는 명동으로 가고, 다른 조는 종로와 대학로로 갑니다. 이렇게 4개 지역을 2일에 걸쳐 조사합시다. 조사 방법은 간단합니다. 브랜드와 목업을 보여주고 5점 척도로 오래 고민하지 않고 순간적인 판단에 의존해서 점수를 받는 것입니다. 각 조에는 서대리를 포함해 디자인팀에서 인원 지원을 4명 해주셔서 디자인을 제시해 주시고, 마케팅의 조윤희씨와 허진희씨가 이틀간 디자인팀과 함께 나가서 소비자의 평가를 메모하여 최종 정리하는 것입니다. 다들 어떻습니까?”
     
  신팀장의 의견에 TFT멤버들은 모두 흔쾌히 동의를 하였다.

  다음 날 첫 길거리 조사로 신팀장도 압구정에 함께 나갔다. 오전 11시가 채 안된 압구정의 로데오 거리는 비교적 한산해 보였다. 이러다가 언제 100명을 채우나 하는 걱정도 잠시 유럽풍의 한 카페에 들어가자 그곳에 아름다운 타겟들이 온통 득실거렸다. 신팀장은 직원들과 함께 커피를 주문하고 카페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카페 안의 손님들에게 간단히 조사를 하였다. 커피를 마시고 거리를 나오자 점심시간이 되어 거리는 사람들로 이내 가득 찼다. 50여 명의 표본을 채운 후 신팀장은 사무실로 복귀하였고 두 사람은 계속 조사를 하기 위해 장소를 강남역 쪽으로 돌렸다. 압구정동의 세련된 여성들에게서도 디자인에 대한 반응이 매우 좋아 사무실로 돌아가는 신팀장의 발걸음은 매우 가벼웠다. 
        
  조사가 끝난 밤, 늦게까지 M&C팀은 결과분석을 하기 위해 퇴근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각 지역별 100명의 표본으로 이틀에 걸쳐 두 개의 디자인에 대해 조사해본 결과도 TFT멤버들의 분분한 의견처럼 우열을 가르기가 힘들 정도였다. 고무적인 것은 두 가지 모두 4.0대의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정확히 사각형의 디자인이 0.3점 앞섰다. 신팀장은 고민에 빠졌다. 본인은 원형이 더 끌리는데, 조사결과로는 사각형이 좀 더 앞섰기 때문에 결과만 보면 사각형으로 결정 날 수 밖에 없었다. 신팀장은 두 명의 팀원을 불러 작은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다들 조사도 하고 결과분석도 하느라 늦게까지 고생들 했어. 결과를 봐서 알겠지만 전체적으로는 사각형이 앞섰지만, 신촌/홍대 쪽만 원형이 좀 앞섰는데, 두 사람 의견은 어때?”

 “사실 저는 원형이 더 좋아요. 손에 잡는 느낌도 좋고, 더 슬림해 보이고.” 

조윤희가 먼저 말했다.

“저도 원형이 마음에 들어요. 특히 실버 색상과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허진희도 바로 말을 이었다.

“흠~ 그래? 사실 나도 그런데….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난 원형으로 밀고 싶어. 그런데 TFT에서 조사결과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면 우리의 의견대로 할 수가 없단 말이지. 그리고 압구정이나 강남 쪽보다 더 타겟에 가까운 신촌/홍대 쪽은 원형이 앞선단 말이야.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건 우리끼리만 아는 비밀로 하고….”
      
신팀장은 다소 주저하는 듯이 말을 끌다가 다짐했다는 듯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 조사결과를 바꾸자!”
“네~? 진짜요, 팀장님?”

두 사람은 평소 원칙주의자인 신팀장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는 듯이 매우 놀라며 이구동성으로 반문하였다.

  "36계에 수상개화(樹上開花) 즉, 나무 위에 꽃을 피운다라는 말이 있어."

  여지없이 나오는 신팀장의 36계 얘기에 두 사람은 미소를 지으며 기다렸다는 듯이 귀를 쫑긋하고 주의를 기울였다.
           
  "본래 철수개화(鐵樹開花) 즉, ‘쇠로 만든 나무에 꽃을 피운다’라는 말이 변한 것으로, 지극히 실현되기 어려운 일을 비유하는 말이지만, 전략적으로는 조화를 진짜 꽃처럼 장식하여 상대방을 속인다는 말이야. 기러기가 높은 하늘을 날 때 무리를 지어 날아가는 것도 허세를 통해 독수리처럼 큰 새들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인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주장을 지키기 위해 때론 진실보다 허세가 필요할 때도 있다고 생각해. 실제로 마케팅도 전쟁터나 다름없어. 적도 속이고 때론 아군도 속여야만 하는 치열한 경쟁의 연속이니까...."
         
  신팀장은 자신만을 우러러 보고 있는 두 팀원을 조심스럽게 바라보며 계속 말을 했다.

“어차피 두 디자인 모두 4.0이 넘는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으니, 무엇이 되었든 대세에는 큰 문제는 없을 거야. 그러니 우리의 안목을 우리 스스로 믿어보고, 우리 한번 저질러 보자.”
“좋아요. 우리는 우리를 믿을 필요가 있어요.”

  두 사람은 신팀장의 의견에 따라 결과를 원형 쪽으로 유리하게 조정하여, 다음 날 오후, 민이사와 대표이사를 포함한 여러 경영진을 모시고 TFT에서 조사결과를 발표하였다. 경영진도 매우 흡족한 평가를 하며 디자인은 결국 원형으로 결정났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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