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소설] 인식의 싸움 67. 마케팅 밀림 속을 헤매다(3)

그렇게 또 한 순배 술을 돌리고 나자 포장개발팀의 김대리가 신중하게 말을 꺼냈다.
  “근데, 오늘 신대리님을 만나자고 한 것은 과거 일을 얘기하자고 그런 것은 아니고요, M&C 브랜드 계약이 완료되었다고 하는데, 제품 개발은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저희가 당부드릴 것도 있어서 입니다.”
       
  김대리는 약간 코맹맹이 목소리에 느릿한 말투가 사투리는 쓰지 않았지만, 마치 ‘나는 충청도 출신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는 아니나 다를까, 충청도 대천 출신으로 부모님이 논밭 팔아 공부시켜 간신히 회사에 취직했다고 우스개 소리도 하는, 이제 갖 대리가 된 신대리보다 3살 아래의 후배였다. 그는 포장재를 개발함에 있어, 제품설계와 금형개발 거래선을 연결하고, 그 과정에 개발된 포장재 거래선을 자재구매팀에 연결시켜주는 한편, 최종적으로 생산에 포장재가 입고되면 공장 품질관리팀에서 제대로 QC(Quality Control)를 할 수 있도록 표준견본을 잡아주는 포장개발의 총체적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신대리는 오기 전부터 오늘 만남의 목적을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드디어 자신이 바랬던 주제가 나오자 내심 기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스로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사정이 한편으로는 한심하게 생각되어 다분히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걱정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영업이나 시장조사 쪽에서만 있었고 마케팅 해 본적도 없어서, 어떻게 제품이 개발되는지 조차 알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이팀장은 가르쳐 주지도 않고, 다른 BM들도 지들 일하기에 치여 아무 관심도 가져주지 않으니, 마치 지난 해 했던 일에 대한 앙갚음을 당하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2주 동안 한 일이 아무 것도 없고,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강태공처럼 세월만 낚고 있답니다.”
       
  신대리의 한숨 섞인 푸념에 이대리가 대답했다.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대로 라면 M&C 프로젝트는 제대로 진행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우리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저는 여기 온지 얼마 안돼서 잘 모르지만, 여기 있는 세 사람은 그 동안 여러 브랜드를 마케팅과 함께 개발해온 핵심 인재들입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아예 처음부터 개발팀과 함께 M&C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대리의 제안은 바로 신대리가 바라던 사항으로써, 신대리는 어둠 속에서 빛 하나를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케팅부에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느 누구의 도움이라도 뿌리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네~, 정말 고맙습니다. 그건 진짜로 제가 바라던 일입니다.”
그러다 문득 신대리는 이런 일을 이렇게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모여서 얘기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의아해하며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아까 김대리님이 말한 당부하고 싶단 얘기는 뭐죠? 그게 오늘 진짜 하고 싶으신 얘기일 것 같은데요?”
  신대리의 질문에 김대리는 술 한잔을 마시더니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깊게 한 모금을 빨고 나자 말을 꺼냈다.
       
  김대리는 장시간 동안 아미앙떼의 개발 사례를 들며, 개발 과정에 있었던 얘기를 하였다. 김대리가 얘기하는 중간에 김대리 담당 업무가 아닌 부분은 친절하게도 다른 사람들이 끼어들며 보완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 주변의 왁자지껄한 분위기와는 걸맞지 않게 얘기가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진행되어서 그런지, 아마도 다른 손님들이 그들을 주의 깊게 봤다면, 신대리 쪽 좌석만 마치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 이질감을 느꼈을지도 몰랐을 것이다.
       
  김대리가 한 말은 한 마디로 그 동안 마케팅과 디자인, 포장개발, 구매에 관련된 풀기 어렵고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와 같은 얘기였다. 또한 구체적으로 누구라고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협력 거래선 선정 과정에도 어느 정도 이권이 개입했을 것이라는 것을 신대리는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김대리의 얘기를 요약하면 결국 모든 문제의 원인은 역시나 마케팅 BM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미앙떼의 NPD(New Product Development) 프로세스의 경우를 살펴보면, 마케팅 BM이 제안한 신제품 컨셉에 대해 디자인팀에서 나온 디자인은 비록 아름다울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전혀 예쁜지 모르겠다고 했으며, 신대리도 그건 전적으로 동의하던 바였다), 원가가 높고 생산성이 매우 떨어지는 디자인이었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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