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소설] 인식의 싸움 52. 사업개발팀(9)

다행히 밤 12시가 되기 전에 일을 마칠 수가 있었다. 집이 먼 조윤희는 10시쯤에 이미 퇴근 하였고, 신대리와 박성준만 변함없이 늦은 밤을 사무실에서 보내고 있었다. 이미 프린트가 된 하나의 사업계획서를 신대리가 마지막 검토를 하는 동안 또 다른 하나의 사업계획서가 더디게 인쇄되고 있었다.

“대리님, 우리도 레이저 프린터 하나 신청하죠? 다른 팀이 쓰다 넘긴 이 놈의 잉크젯은 속도가 너무 느려 답답해서 일 못하겠어요.”

인쇄를 기다리는 것이 마냥 답답하다는 듯이 박성준의 푸념이 또 터졌지만, 신대리는 별 다른 대꾸 없이 마지막 한 장까지 검토를 마무리했다.



“첫 번째 안은 오타가 몇 군데 있는 것만 빼면 별 문제 없겠는데, 일단 시간이 너무 걸리니까, 다시 인쇄하지 말고 이걸로 내일 보고할게. 근데 둘째 안은 아직 인쇄 안됐어?”

“그러게 인쇄가 너무 느려서 안되겠다니까요. 그래도 이제 두 장 남았어요.”

“그래? 그럼 인쇄된 것부터 먼저 볼게. 이리 줘봐.”

박성준은 프린터에 수북이 쌓여있는 두 번째 계획서를 조심스럽게 꺼내, 책상에서 두 세 번 탁탁 쳐서 가지런하게 정리한 후 신대리에게 건넸다. 둘째 안은 신대리가 직접 작성한 내용을 박성준이 교정을 보며 마무리한 것이라 첫 번째 보다 검토가 쉽게 끝났다.
“이 정도면 된 것 같아. 각 기획안 별 4P Mix와 장단점이 잘 정리된 것 같다. 내일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최상무님을 찾아가서 재가만 받으면 되겠어. 첫 번째 안에 대해서 강하게 밀어주셔야 될텐데…, 아무래도 회사는 더 이상 인원증원을 하지 않으려는 것 같아. 두 번째 안으로 M&C를 한다면 비싼 로열티 주면서까지 외국 브랜드를 도입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아무튼 늦게까지 고생했어. 이만 퇴근하자.”

“대리님도 수고 많으셨어요.”

모든 사무실이 까맣게 꺼진 복도를 둘이서 걸어보는 것도 오랜만인 것 같았다. 이제는 익숙해질만도 하지만, 신대리는 아무도 없는 어두운 복도가 아직도 낯설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며, 자신의 모든 열정을 다 바치는 삶의 터전인 이곳이 가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닌 듯 동떨어진 느낌이 드는 이유는 왜일까? 신대리는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 하며 생각을 애써 떨쳐 버리고 밖으로 나왔다. 예년 같지 않은 5월의 더위도 밤이 되니 마냥 상큼하게만 느껴졌다.

최상무는 신대리의 지지자 중의 한 명이었기 때문에, 다음 날 아침 최상무와의 미팅은 예상했던 대로 큰 어려움이 없었으나, 단지 인원 증가에 대한 부담만은 최상무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직영영업소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기에 신대리의 의견을 따를 수 밖에 없음도 더욱 잘 알고 있었다. 특히, 향후 직영영업소를 줄이면서 남는 유휴인력을 신규 조직에서 흡수할 수 있다는 신대리의 설득은 최상무의 걱정을 다소 해소하는데 효과적이었다.

최상무의 재가를 받은 신대리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업개발팀에 돌아와서, 송팀장에게 보고했다. 송팀장은 미쳐 자신이 보지 못한 사업계획서임에도 불구하고, 자세히 살펴볼 생각은 하지도 않고 다만 최상무의 결재를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OK를 하며 나중에 읽어보겠다고 하였다. 신대리는 어제부터 송팀장의 행동을 의아해 하였지만, 별도로 다른 말은 하지 못하고 조윤희에게 자료를 넘기며 말했다.

“이 다음부터는 윤희씨 역할만 남았네. 어제도 야근했는데 미안하지만 이거 잘 좀 부탁해.”

“네, 오늘이 불타는 금요일이지만, 별 약속도 없으니 걱정 마세요. 이거에만 전념하면 오후에는 다 끝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조윤희의 시원한 대답에 신대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송팀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팀장님, 두 가지 안을 만들었으나 제 생각에는 별도의 영업조직을 구성하는 안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영업부와 더 의논할 바가 많아서 저와 박성준씨는 오늘 직영영업소를 돌며 소장들과 의논 좀 하고 오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와요.”

사업계획은 보지도 않으면서 뭐가 그리 바쁜지 송팀장은 신대리의 말을 건성으로 흘려 듣고, 빨리 나가라는 듯이 손짓을 하며 말했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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