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소설] 인식의 싸움 54. 사업개발팀(11)

순간 고요한 침묵을 깨고 조윤희가 기지개를 활짝 펴며 말했다.

“대리님, 다 된 것 같은데요?”

신대리는 마치 잠에서 덜 깬 사람처럼 아득히 조윤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으응? 드디어 다됐나?”

“한번 보실래요?”

“뭐, 봐봤자, 내가 불어를 알아야 말이지? 아무튼 수고 많았어. 나도 덕분에 오랜만에 책 좀 읽었네”

“내일 아침에 팀장님 검토하신 후 바로 파리로 보낼게요.”

신대리는 토요일에도 출근하여 투정하나 없이 활짝 웃으며 결국 제 몫을 다 끝낸 지금의 그녀가 잘 꾸민 세련된 모습의 평상 시 보다 더욱 예뻐 보였다.

“그럼, 휴일에 고생했는데 얼른 들어가서 푹 쉬자.”

“그냥 들어가요? 대리님, 옆 제과점에서 팥빙수라도 먹고 들어가요. 저 오늘 이렇게 고생했는데, 시원한 것도 하나 안 사줄 건가요?”

지금까지 남자들 하고만 근무해왔던 신대리는 처음으로 함께 일하는 여직원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순간 당혹스럽기도 하였다. 그는 시원한 생맥주에 대한 간절한 생각을 떨쳐 버리고, 그녀를 따라 마지 못해 제과점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여자와 단둘이 팥빙수를 먹는 것도 몇 년 전 헤어진 여자친구와 연애했을 때 이후로 처음인 일이었고, 업무시간이 아닌 휴일에 그것도 맨 정신으로 조윤희와 단둘이 있는 이런 시간이 처음엔 사뭇 어색하기만 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론 박성준 없이 이렇게 처음으로 그녀와 둘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그에겐 의미 깊은 시간이 될 것만 같았다. 그 동안 항상 박성준과 단둘이 붙어 다녔던 신대리는 지난 6개월 동안 그녀가 어떤 생각으로 일해왔는지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요즘, 일하느라 많이 힘들었지? 그래도 얼추 중요한 일은 다 끝난 것 같아 다행이야.”

신대리는 커다란 팥빙수를 먹으며 조윤희와 이런저런 세상 사는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이미 거의 다 녹아 걸죽한 죽처럼 된 반쯤 남은 팥빙수를 작은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휙휙 젓다가 문득 그녀를 바라보며 회사 일로 화제를 돌렸다.

“저야 뭐~? 새로운 일에 항상 즐겁지요. 특히 마케팅이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신대리님이랑 일하는 것도 좋고요.”

“그래? 다행이네. 난 윤희씨가 우리 팀의 여러 사소한 일들을 다 처리해 줘서 고맙기도 하고 때론 미안하기도 하던데…”

“어머~! 그걸 이제 와서 오늘 팥빙수 하나로 때우시려고요?”

“하하~, 그건 아니고. 윤희씨가 원하면 언제든지 내가 한턱 낼게. 말만해.”

“네, 분명 약속하신 거에요? 그럼 확인…”

조윤희는 오른 손 새끼 손가락을 펴서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신대리에게 내밀었다. 신대리도 순간 얼떨결에 새끼 손가락을 내밀자 그녀는 그의 손에 깍지를 끼며 다짐하듯이 말했다.

“약속입니다. 도장 찍고, 증거를 남기기 위해 복사~~.”

조윤희는 어리둥절해 하는 신대리의 엄지 손가락을 펴서 서로 엄지끼리 마주하여 인장을 찍은 후, 그의 손을 펴서 복사를 한다며 손바닥을 서로 스쳐 지나가게 했다. 신대리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또 한 번 당황하며 그녀의 보드라운 손의 감촉의 여운이 남아있는 손바닥을 들여다 보며 어안이 벙벙하였지만,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말이어요, 대리님~.”

그녀의 부르는 소리에 그는 갑자기 현실로 돌아와 당황하듯 대답하였다.

“어~ 어~? 응…. 왜?”

“사실 전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우리 팀에서 저만 항상 혼자인 것 같아 좀 외로워요. 대리님과 박선배는 맨날 둘이만 붙어 다니시고, 송팀장님은 맨날 혼자서 따로…”

그녀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꼬리를 흐렸다.

“그랬어? 난 나름 윤희씨도 성준이랑 같이 잘 어울리는 줄 알았는데…”
그녀는 송팀장과 신대리 사이에서 나름 밝게 행동하며 모두에게 잘 어울리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동떨어진 느낌에 어떤 때는 외로움도 느낀다는 말이 나오자, 신대리는 미안함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애꿎은 팥빙수만 저으며 무슨 변명거리를 찾으려다 끝내 박성준에게 핑계를 돌려댔다.

“아무튼 내가 미안하네. 맨날 일만 바빴지 미처 윤희씨 생각은 잘 못했던 것 같아.”

그는 그녀에게 앞으로 한 팀원으로써 항상 함께 할 것을 약속하며 그녀를 위로해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 동안 참아왔던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는데, 대부분이 송팀장에 대한 것이었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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