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소설] 인식의 싸움 2. 갑작스런 인사발령(2)

머리가 아파 퇴근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나와 집으로 가는 길은 평소보다 무척 한산했다. 버스 뒤쪽 빈 자리에 신대리는 몸을 던지듯이 털썩 주저앉았다. 버스가 몇 정거장을 지나도록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으며 초점 없는 눈으로 하염없이 차창 밖만 내다봤다. 어느덧, 어두워진 거리에는 가로등불이 하나 둘씩 켜지더니, 한 순간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마치 강렬한 빛으로 변해 그의 눈 앞으로 쏟아지듯 달려왔다. 순간 그는 아찔함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 가슴이 울렁거리며 몰려오는 어지러움과 메슥거림을 참으며 그는 간신히 창문을 조금 열었다.

가을 저녁 신선한 공기가 폐 속 깊이 찔러 들어오자 어느덧 답답함이 조금이나마 가시는 것 같았다. 그는 용기를 내어 눈을 다시 창 밖으로 돌렸다. 차 창가를 휙휙 지나가는 가로수 넘어 상가 간판들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모이며, IMF시절 어렵게 취업을 준비했던 당시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신대리는 IMF 환란이 기승을 부리던 세기말의 어둠 속에서 대학을 졸업하였다. 당시는 수십 년간 회사를 위해 목숨 바쳐 일했던 간부들이 거리로 내쫒기고, 수 많은 기업들이 부도가 나서 대한민국은 사상 최악의 취업난을 겪고 있었던 때라, 대졸 취업준비생들이 대기업에 신입사원으로 채용된다는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격동의 시절이었다.

1997년 갑작스런 외국자본의 이탈로 우리가 가진 금고의 외환이 부족해지고 환율이 요동치기 시작하자, 급속히 외국인 투자자들의 외화자산이 유출되는 악순환이 발생하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몇몇 신흥공업국가들은 유동성의 위기와 함께 부도 상태에 직면하게 되었다.

다급해진 정부는 돈을 빌려 준 채권국을 찾아가 대출의 만기를 연장해 줄 것을 부탁하는 한편, 당장 갚아야 할 돈을 빌리기 위해 일본과 미국 등 여러 우방국에 긴급 자금의 지원을 요청하였으나, 보기 좋게 거절당하고 결국 IMF에서 대출을 받아 빚을 갚아야만 했기 때문에, 정부는 자본시장의 개방과 기업의 구조조정, 고금리정책 등의 강도 높은 IMF 요구사항들을 어쩔 수 없이 들어 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부채비율이 높았던 중소기업은 도산하고, 수익성보다는 매출성장으로 몸집만 키웠던 대기업들도 크게 휘청하게 되어 구조조정이란 명목 하에 수 많은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쫓겨나야 했으며, 대출을 통해 부동산에 투자했던 개인들도 고금리에 따른 이자폭탄에 개인파산을 신청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한 해가 지난 1998년 겨울, 대학 4학년생이었던 신대리는 대학을 졸업하여도 미래가 보이지 않았던 IMF의 암울한 대학생활을 마무리하며, 대학원 진학을 위해 도서관에만 처박혀 있었다.

그도 처음엔 취직을 하기 위해, 원달러 환율이 2,000원을 넘나들었던 미친 환율의 시절에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을 간신히 졸라 미국에서 1년 간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등, 갖은 스펙으로 무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취업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신입사원을 아예 뽑지도 않는 무척 추운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대학원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과는 달리 시험에 떨어지고 말았다. 워낙 쟁쟁한 실력의 공인회계사 준비 학생들이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대학원을 진학하고 있었고, IMF 때문에 취업이 어려운 졸업생들이 너무 많아 대학원 진학의 경쟁도 보통 치열한 것이 아니었다. 어쨌든 별 수없이 다음 시험을 대비해서 6개월을 더 공부하기로 결심한 그는 졸업 후에도 여전히 학교 도서관을 지키고 있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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