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소설] 인식의 싸움 36. 마케팅 전략 조사보고(7)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말이 있다. 너도 잘 알지? 그런데 그게 어디서 유래된 말인지 아니?”

“네... 뜻은 대충 아는데, 유래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네요.”

“한자를 풀어 보면, 눈을 비비고 다시 보며(刮目) 상대방을 대(對)한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성과나 학식이 크게 진보한 경우를 말하는 것인데, 그 유래는 우리가 잘 아는 삼국지에서 나오는 거야. 시간이 조금 남았는데, 얘기해줄까?”

“네. 어서 해주세요. 나도 삼국지를 한번 읽었는데 그런 건 기억이 잘 안 나네요.”

“그래. 그럼…, 오나라 손권의 부하 중에 여몽(呂蒙)이라는 장수가 있었는데, 여몽은 잘 알지?”

“네. 잘 알죠. 오나라 주유가 죽자 대장군이 된 사람이죠.”

“그래, 맞아. 그런데 여몽은 졸병에서 시작하여 장군까지 된 사람이라 용맹하고 충성스러웠으나, 한마디로 무식했어. 그래서 손권은 그가 장군으로서 이론적인 병법까지 알아야 한다며 학문을 깨우치도록 여러 번 충고를 했다고 하네. 이때부터 여몽은 전쟁터에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공부했다고 하더라. 얼마 후 손권의 참모이자 뛰어난 학식을 가진 노숙이 여몽과 의논할 일이 있어 찾아왔는데, 여몽과 막역한 사이여서 여몽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노숙은 예전의 그가 아닌 여몽을 보며 깜짝 놀라하자, 여몽(呂蒙)이 한 말이 바로 이 말이라고 하네. 선비가 헤어진 지 사흘이 지나면 눈을 비비고 다시 대해야 할 정도로 달라져 있어야 하는 법이라고, 즉 괄목상대인 거지. 그러게 사람은 배우고 또 배워야 해. 배움엔 끝이 없는 것이야. 여몽의 말처럼 3일만 지나면 괄목상대해질 수 있는 것이 사람인데, 우린 벌써 1년이나 지나지 않았니? 너도 3일 후엔 괄목상대해지길 바란다. 하하~”

“걱정마세요, 대리님. 어디 한번 이 한 몸 불 살러 한 줌 재가 되도록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꼭 괄목상대해진 저를 발견하실 것입니다.”

박성준의 자신에 찬 목소리에 신대리는 일말의 걱정조차 모두 떨쳐 버리고 마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박성준의 도움으로 보고서 작성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무엇보다도 데이터를 분석하고 정리하는 일에 있어서는 박성준도 이제 이력이 났는지, 어려움 없이 필요한 도표와 그래프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덕분에 신대리는 시장현황에 대해 손쉽게 글을 정리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자, 신대리도 이만하면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됐다. 무엇보다도 박성준과 작업을 하는 동안 많은 대화를 통해 가장 큰 고민이었던 후속 브랜드에 대한 대안 하나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수확이기도 했다.

보고서는 A4 용지 100 장에 육박하는 방대한 분량이었다. 신대리는 보고서를 일일이 프린트 하기가 힘들어, 인쇄소에 제본으로 10권을 요청했다. 그리고 3일 후, 모든 사람들이 퇴근하고 없는 빈 사무실로 박성준은 전문서적과도 같은 두툼한 보고서로 가득 찬 쇼핑백을 들고 왔다.

“휴~, 대리님 이거 제법 무거운데요?”

“드디어 나왔군. 어디 한 권 줘봐.”

커버를 열자, 평상시 그리 좋아하지 않던 인쇄 냄새가 상큼한 풀 내음 마냥 향기롭게 신대리의 코를 간지럽혔다. 신대리는 숨을 깊게 들여 마시며 말했다.

“흠~, 냄새 좋고….”

“대리님 솔직히 냄새가 좋지는 않네요.”

“그래? 난 유난히 좋기만 한데. 어디 우리 같이 다시 한번 읽어볼까?”

신대리는 그 동안 수도 없이 읽고 또 읽어, 이제는 거의 외우다시피 한 보고서를 다시 한번 읽어봤다. 2개월이 넘는 동안 밤낮으로 매달렸던 일이었는데도, 내용 하나 하나가 모두 새로운 것처럼 낯설게만 느껴져 순간 당혹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우린 루미콘 강을 건너 버렸다. 이제 우리 운명은 이 것 하나에 달려있어. 오늘 밤에 보고서를 모든 임원들 책상에 올려 놓는 거야. 사장님실에는 들어가기가 쉽지 않으니까, 내일 아침 비서인 지대리가 전달할 수 있도록 비서 책상 위에 메모와 함께 올려놓고 퇴근하자.”

“대리님, 그러다 보고서가 잘못 전달되면 어쩌시려고 그래요?”

“하하~! 걱정마라. 지대리랑은 그 동안 많이 친해놨으니. 지대리는 회사에 충성심도 강하고 비서로만 만족하지 않는 여자야. 그래서 그런지 나랑 마음이 맞아서 의기투합하게 되어 우리처럼 회사를 혁신하는데 한 발자국 담그고 싶어한단다. 내가 미리 다 얘기해놨으니, 걱정하지마.”

“아니, 제겐 경거망동한 행동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바보인 척하면서 행동을 삼가 하라며, 36계니 가치부전(假痴不癲)이니 하며 어려운 말 들먹이시더니, 그새 언제 여자 앞에서는 비밀을 다 털어 놓으면 어떡해요? 혹 지대리님의 미인계에 당하신 것 아니어요?"

박성준의 농에 신대리는 정색을 하고 응대했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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