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오전 간단한 일정과 함께 본선 진행사항에 대해 본격적인 회의가 진행되었다. 신팀장은 이벤트 대행사가 제시한 두터운 큐 시트를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며 동선과 시간을 일일이 체크하였다. 점심시간이 다 될 때까지 폭풍 같은 미팅에 모두들 지쳐가고 있을 즈음에 신팀장의 휴대폰이 계속 울렸다. 누나였다. 신팀장은 중요한 회의가 방해가 되어 휴대폰을 받지 않고 껐다가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누나에게 전화를 하였다. 전화기 넘어 다급한 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이리 전화를 안받아?” “응, 중요한 회의 중이라서…” “어머니 상태가 좋지 않으셔, 빨리 병원으로 와야겠어.” “뭐라고? 여기 지금 대관령인데 어쩌지? 오래 걸릴텐데…” “아무튼 빨리 와!” 신팀장은 오후 나머지 일정을 조윤희와 허진희에게 맡기고 한 달음에 차를 몰아 병원으로 향했다. 4시간이 되어서야 병원에 도착한 신팀장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수술 동의서였다. 어머니의 병세가 호전되는 듯하여 그 동안 안심하였는데, 어제부터 갑자기 악화되며 의식을 잃으셔서 이제는 최악의 수단으로 수술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일단 의사는 수술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니 걱정 말
그렇게 일을 마무리하고 하루가 지난 지금은 이렇게 강원도 대관령에 와 있는 것이다. 신팀장은 샤워를 마치고 들어오며 사온 맥주 한 캔을 꺼내 들었다. 리조트의 넓은 콘도에 오늘은 모처럼 혼자 머물게 되어, 간만에 마음 차분히 내일 있을 미팅을 준비할 수 있었다. 본선대회 큐시트를 보며 VIP 입장 동선과 시간을 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딩동하는 벨소리가 울렸다.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누가 연락도 없이 오나 궁금했지만, 신팀장은 진행팀 중 누구겠지 하며 무심코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낯 익은 젊은 여자 한 명이 인사와 함께 무작정 방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어? 누구시지?” 신팀장이 자세히 보니 오늘 문제가 있다며 퇴소시켜야겠다고 후보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소개하며 꼭 드릴 말씀이 있으니 시간을 조금만 내 달라고 요청하였지만, 신팀장은 늦은 시간이니 내일 진행팀에 얘기하라며 그녀를 내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할 수 없이 신팀장은 그녀를 식탁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그래. 왜 그러신지 여기 앉아서 간단하게 얘기해 보세요.” “어? 맥주 드시네요? 저도 하나 마시면 안될까요?” 당돌한 그녀의 말
카메라 테스트와 개별 면접으로 진행된 모델 선발대회의 예선전이 끝나고 후보 20명이 선발되어 대관령에 있는 리조트로 합숙훈련을 들어갔다. 후보들은 2주간 이곳에서 전문 모델의 워킹(Walking)과 댄스, 그리고 간단한 연기를 배우고 결선 무대에 설 것이다. 결선무대에는 유명 영화감독, 방송국 PD, 메이크업 아티스트, 모델협회장 등의 심사위원들을 모시고 유니버셜아트센터에서 대대적인 행사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화장품 모델이라면 얼굴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이번 행사는 단순히 얼굴만 보고 뽑는 화장품 모델이 아니라, 미래의 스타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실력을 전문가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궁극적으로 다른 목적도 있었는데, 바로 연예부 기자들을 행사에 초청해서 기사화할 만한 멋진 무대가 연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팀장은 팀원들과 이벤트 대행사 사장과 함께 대관령을 찾았다. 이 곳에서 이틀 간 묵으면서 합숙훈련 상황도 살피고 대행사 진행팀과 본선 준비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 온 것이다. 행사 주관사의 마케팅 팀장이 온다는 소식에 모델 후보들을 비롯하여 대행사 진행자들은 미리부터 행사가
다 함께 관광버스를 타고 여섯 시간이나 걸려 경주에 도착한 영업부와 예비 점장들의 얼굴은 피곤한 기색도 없이 마치 소풍 온 어린 아이들 마냥 활짝 즐거운 표정이 왁자지껄 펼쳐지고 있었다. 일행은 경주에서도 유명한 최고급 호텔에 짐을 풀었다. 평소 최상무는 다른 건 몰라도 유통조직을 동기부여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최고로 대우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최고로 대우해야 그들이 최고가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래서 가끔은 경비를 절약해야 한다는 회사 측 입장과 충돌하기도 하였지만, 최상무는 이에 굴하지 않고 초지일관 자신의 주장대로 해왔다. 사실 이런 특급 호텔비용은 앞으로 그들에게 지불할 판촉비에 비하면 세발의 피였다. 오히려 이럴 때 화끈하게 대우하고 판촉비를 절약하는 것이 회사로서는 더 큰 이익임을 최상무는 잘 알고 있었다. 신팀장도 오늘만은 모든 걸 다 잊고, 다시 영업시절로 돌아가 마음 편히 있고자 하였다. 짐을 풀고 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이미 여러 잔의 술이 돌았지만, 마음이 편해서인지 천년의 고도 경주에 와서 그런지 술이 전혀 취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1차가 끝나고 2차로 맥주 한잔을 더 하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뿔뿔
“이사님, 마케팅 4P에서 유통도 마케팅이 해야 할 일이라고 이사님께 배웠습니다. 그런 것이 아닌지요?” “그런 게 아니라 지금 모델 선발대회가 막바지인데다가, 새로운 매장 디자인은 어떡할 건가? 그런데도 자리를 비워도 되냐 하는 말이야! 그리고 한창 용기 견본들이 나오고 있는 신제품 진행사항도 다 일일이 컨펌해줘야 하지 않나?” 신팀장의 말 대꾸에 민이사의 짜증은 점점 화로 변하며 언성이 더 높아졌다. “네. 일에 차질이 없도록 팀원들과 대행사와 업무정리하고 다녀오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알았어. 다녀 오게.” 민이사는 더 이상 뭐라 말하지 않고 고개를 확 돌려 신팀장을 외면하며 말을 맺었다. 민이사의 방에서 나오며 신팀장은 큰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일이 진행되면 될수록 민이사와 최상무의 사이가 급격히 나빠지고 있으며, 두 사람은 마치 고부 간의 갈등처럼 신팀장을 사이에 두고 상대방을 비난하며 한심하고 답답하게 여겼다. 최상무는 화장품 시장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마케팅을 한다며 현실과 안 맞게 뜬 구름만 잡으며 잘난 척만 한다고 민이사를 비난하였고, 민이사는 영업은 유통을 확보하여 마케팅 전략에 따라 매장에 제품만 제대로 유통하면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매우 바쁜 건 알지만, 7월 첫째 주 즈음에 경주에서 대리점 사장들을 모시고 사업설명회를 하려고 하는데, 자네는 꼭 참석해야겠어. 그 때 제품 교육과 마케팅 전략도 함께 설명해 주면 좋겠는데.... 괜찮겠는가?” “네? 아…, 제가 자리를 오래 비울 수가 없는 상황이라 바로 대답을 드리기가 곤란한데요.” “아니야! 이건 매우 중요한 일이야. 마케팅 팀장이 빠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자네 시간에 맞춰 일정을 조정하도록 할테니 무조건 참석해야 해. 적절한 시간을 영업지원팀장에게 알려주게.” 최상무는 매우 단호하게 말을 맺었다. 신팀장은 어머니가 걱정되기도 하고 제품 개발에 모델선발대회까지 겹쳐 도대체 일초의 시간도 아쉬울 판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몇 개월간 질질 끌었던 매장 인테리어를 확정하고, 300개 제품을 어떻게 디스플레이 할지도 결정해야 할 때였다. 다행히 최근에 주얼리 프랜차이즈 점포에서 VMD(Visual Merchandiser) 경험이 풍부한 우수한 직원을 뽑은 바가 있어서 큰 걱정은 없었지만, 화장품 경험이 전혀 없는 직원이었기 때문에 당장은 그가 함께 해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문득 다 떨쳐버리고
병원에는 온 가족들이 이미 와 있었다. 어머니는 산소호흡기를 끼고 의식을 못 차리고 계셨다. 순간 왈칵 가슴이 치밀어 오르며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복막투석을 한 것이 복막염을 일으켜서 몸에 독소들이 쫙 퍼져서 그렇데. 일단 독소를 제거하고..., 근데 더 이상 투석을 못할지도 모른다는데, 어떡하면 좋으니?” 누나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일단 기다려 봐야지. 조금만 기다려 보자.” 신팀장은 오히려 누나를 위로해 주며 다시 한번 억지로 마음을 가다듬었는데, 어쩌면 이 말은 누나가 아니라 그 스스로를 위로하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오랜 당뇨에 심장병까지 있어 수술도 어려워 의사도 어쩌지를 못하고, 단지 가장 최악의 상태를 막아보는 방법뿐이 없었다. 신팀장은 그날 밤새 병실을 지켰지만 어머니가 정신을 차리지를 못하자, 결국 아침이 되어 그저 피곤한 몸을 간신히 이끌고 회사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비몽사몽에 어찌어찌 하루를 보내고 병실을 다시 찾았을 때는 다행히 어머니가 깨어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의식이 없었을 때가 더 좋았을 정도로 목에 연결한 호스로 피를 토하며 고통에 몸부림치고 계셨다. “어찌 된거야?”
“이번 모델 선발 대회는 대행사에게만 맡겨서 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경영진이 모여 있는 6월 월간회의 석상에서 신팀장은 모델 선발 대회의 목적과 실행계획을 설명한 후, 최후의 변론을 하는 변호사의 심정처럼 경영진을 향해 간곡히 말을 하였다. “이 일은 또한 마케팅부문의 일개 팀인 M&C팀 하나 만의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M&C의 성공은 현재 어려운 상황에 처한 우리회사의 사활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따라서 저는 이번 모델 대회를 계기로 전 직원이 동참하는 전사적인 캠페인을 진행했으면 합니다. 총무, 회계 부서의 한 사람이라도 예외는 없습니다. 모두가 참가해서 회사의 소속감도 고취시키고 회사의 대형 프로젝트에 조금이나마 일익을 담당했다는 자부심도 키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 어떻게 참여시킨다는 것인가?” 등받이에 기대어 앉아 있던 대표이사가 자리를 고쳐 앉으며 머리를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네, 사장님! 저는 대학생 모델 선발대회 홍보를 위해 전 직원이 여러 대학교 인근이나 직장인들이 많이 오는 거리에 나가서 홍보 전단지를 나눠 주는 행사를 했으면 합니다. 직원 마다 사는 집이 다를 테니
“그래 맞아. 바로 36계에서 말한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략이다." 아니나 다를까, 매번 상황마다 딱 들어맞는 신팀장의 고사성어가 드디어 나오자, 사람들은 한껏 기대에 부풀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성동격서(聲東擊西), 동쪽을 향해 소리치고 난리법석을 떨어도 사실은 서쪽을 공격하는 것이지. 우리는 일반인 모델을 뽑는다고 대대적인 행사를 진행하며, 광고, 홍보에 각종 프로모션도 하는 거야. 하지만 진정한 목적은 모델을 뽑는 그 자체가 아니라, 아직 화장품으로서 잘 알려지지 않은 M&C를 론칭 전에 소비자들에게 크게 인식시키고, 영업부에서 만나는 점장들의 기대감도 부풀리게 하여 미리 점포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 포스터도 붙이고 인터넷과 신문에 기사도 내고, 이벤트에 대한 광고도 하여, 마치 수퍼모델 선발대회처럼 대대적인 행사를 하는 거야. 5월에 광고 홍보를 하여 모델후보들을 모집하고, 6월에 카메라 테스트 등의 예선전을 치르며 한번 더 각종 매체에 홍보를 하여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하는 거야. 그리고 마침내 7월에 대규모 본선 행사를 벌여서 모델을 뽑으며, 또 다시 그 결과를 계속 인터넷과 매체에 홍보를 하여, 9월에 1호점을 론
이미 여러 잔이 오가는 동안 눈이 반쯤 감긴 팀원들을 보고 미용연구팀 정대리가 최근에 새로 입사한 영업지원팀의 김우진을 데리고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아니, 이게 뭡니까? 우리들은 뼈빠지게 일하는 동안, 팔자 좋게 술이나 마시고 있어도 되는 거에요?” 그녀는 항상 부럽다는 표현을 핀잔 섞인 투덜거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입버릇처럼 된지 오래였다.“우리도 논 거 아냐. 지금까지 얼마나 열띤 회의를 했는데? 아무튼 우리가 낸 지금까지의 아이디어를 설명할 테니 새로운 사람들이 새로운 의견을 좀 더 줘봐.” “어~? 우진이도 함께 왔구나. 어서 와~. 너도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내가 함께 오라고 불렀다. 그런데 윤희씨, 성준이는 안 온데?” 신팀장은 박성준에게 전화했던 조윤희를 바라 보았지만, 조윤희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가로 저을 뿐이었다. 조윤희 혼자 마케팅에 합류한 이후 신팀장과 박성준은 더욱 거리가 멀어져서, 신팀장이 아무리 전화를 해도 전화를 받으려고 하질 않았다. 신팀장은 박성준에 대해서 항상 마음이 마냥 무겁기만 하였다. 이때 정대리가 항의하듯 말했다. “너무 부려 먹으려고만 하지 말고, 우리도 일단 맥주 한잔부터 합시다.” 신팀장은 얼
“민이사님, 도저히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사무실에서는 여기저기에서 끊임없이 전화도 많이 오고 사람들도 쉼 없이 찾아와서, 도저히 팀원들이랑 차분히 미팅하기도 힘듭니다. 저희 팀에게 반나절의 자유를 주셨으면 합니다.” 파리에서 돌아온 지 이주일이 지났지만, 신팀장은 아직도 어떻게 해야 제품도 나오기 전에 미리 브랜드숍을 하겠다는 점장들을 확보할 수 있을지 대안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스러웠다. 뭐 좀 일하다 보면 뚝딱 하루가 그냥 지나가는 것이 왜 이리 시간은 빨리 지나가는지, 그는 급기야 초조해지기 까지 했다. 그래서 그는 큰 마음을 먹고 민이사를 찾아갔다. “자유라니? 무슨 말인가?” “지금부터 팀원들을 데리고 사무실을 떠나 휴대폰도 꺼놓고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으며 자유로운 마음으로 미팅을 하고 오겠습니다. 아이디어가 나올 때까지 밤을 새워서라도 하겠습니다. 장소도 묻지 말아주세요. 내일 아침에는 정상 출근하겠습니다.” “다른 팀들도 있는데 꼭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 “네! 그렇지 않으면 안될 것 같습니다. 또 이렇게 일주일을 더 보낼 수는 없습니다.” 민이사는 내심 ‘요놈 봐라’ 하며, 대리팀장이 확실히 당돌하다고 생각 하다가도
오후가 되어 어느 정도 숙취가 가신 신팀장은 다시 예전의 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에게 제품의 콘셉트부터 최종 디자인까지 두 시간에 걸쳐 설명을 마치자 슬쩍 영업 쪽에 화두를 던졌다. “이 사업의 성공여부는 뭐니뭐니 해도 새롭게 만들어지는 브랜드숍을 빠른 시일 내에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품이 출시되고 1호점이 오픈하면 사업설명회를 통해 바로 전국적인 프랜차이즈로 쫙 깔아 나가야만 합니다. 그래서 미리미리 우수한 화장품전문점들 중에서 프랜차이즈 후보점들을 리스트하고, 우리와 거래할 점주들과 사전협의를 해야겠죠.” “그런데 제품도 없이 디자인 사진 몇 장만 가지고 어떻게 점주들과 상담을 하죠?” 부산지역 문지점장이 질문하였다. 신팀장도 이것이 가장 큰 풀리지 않는 고민인지라 바로 대답을 할 수 없었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았다. “맞습니다. 어려운 일이죠. 그러니 여러분들 같은 베테랑들을 벌써부터 미리 뽑은 것 아니겠습니까? 마케팅에서도 좋은 안을 준비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또한 M&C 브랜드숍에서는 철저하게 가격할인을 하지 않는 정가제를 실시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요즘처럼 화장품 가격이 무너져
총 300여 가지의 품목을 선정하고 개발 방향을 결정한 TFT는 각자의 자리에서 여념없이 개발에 몰두하며 일주일에 한번씩 진행사항들을 공유했다. 기초화장품은 크게 중저가대, 중고가대, 그리고 프레미엄 고가로 나뉘었다. 중저가대의 제품은 거래처 프리몰드를 활용하여 보편적인 디자인에 다양한 천연성분에 맞게 그래픽 디자인을 입힌 피부진정 및 보습라인을 구성하였고, 고가대는 프랑스와 인접한 알프스의 천연 허브 피토 테라피를 활용한 고기능성 라인으로 포진하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중고가대의 M&C라인인데, 간판 브랜드에 맞게 기초, 색조, 바디, 향수 등의 화장품의 전 라인을 형성하는 파리 풍의 패션 지향적이고 감각적인 품목이 라인업 되었다. 특히 색조제품의 경우는 자칫 앞으로 남고 뒤로 까진다는 말처럼 부진재고에 대한 위험이 크기 때문에, 다양한 품목과 색상의 결정에 신팀장은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것이 마케팅, 디자인, 포장개발부, 구매부, 연구소에서 병렬로 연결되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고성능 컴퓨터의 네트워크와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의 핵심에 서있는 사람이 바로 신팀장이었다.
어느 새 저녁 시간이 되어 일행은 근처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겨 와인과 함께 프랑스식 식사를 하였다. 치즈 소스에 덮인 달팽이요리와, 난생 처음 먹어 보는 부드러운 프와그라가 곁들어진 스테이크 요리를 매우 맛있게 먹으며 파리의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특히 보르도 메독지방의 다소 드라이 하지만 깔끔한 풍취의 와인은 비교적 느끼한 프랑스 음식들을 상큼하게 돋구어줘 신팀장은 하나도 남김없이 음식을 깨끗이 비우고 말았다. 마담 소피와 헤어지고 미셸리는 신팀장과 민이사를 호텔에 내려주며 인사와 함께 피곤했던 하루를 마무리하듯 바로 뒤돌아 섰다. 신팀장은 호텔 회전문으로 들어서는 민이사를 바라보다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미셸리를 바라보기를 반복하며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미셸리를 부르며 그녀를 따라 뛰어갔다. “미셸리 사장님~! 잠시만요~!” 미셸리는 막 출발하려던 그녀의 BMW를 멈추고 고개를 내밀며 의아하다는 듯이 신팀장을 바라 보았다. 신팀장은 무작정 차문을 열고 그녀의 옆 자리에 올랐다. “웬 일이시죠?” 미셸리의 대답에 신팀장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사장님, 제가 오늘 파리에 처음 왔는데 하루 종일 회의만 하고, 그 유명한 파리의 한 구석조차 보
마담 소피는 신팀장이 가져온 디자인 목업을 보고, 프랑스인 특유의 감성 풍부한 표정과 탄성으로 원더풀을 반복하며, 한국에서 제품이 출시되면 오히려 프랑스에서 수입을 하고 싶다는 말도 하였다. 이렇게 초반 좋은 분위기로 시작된 회의는 근 세 시간 동안, 향후 M&C 화장품의 전 세계 판권, 한국에서의 론칭 행사, 우수 대리점 사장들의 파리 여행지원, 그리고 파리 본사의 까다로운 COC(Code Of Conduct)의 완화 등 다양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COC란 글로벌 회사에서 전 세계 법인 및 라이센씨(Licensee)들에게 규정한 공통으로 지켜야 할 업무 규정으로써, 본사에서 브랜드와 디자인, 품질 등을 검사하고 통제하기 위한 까다로운 법규와 같은 것이다. “자, 그럼 제가 마지막으로 정리를 하겠습니다.” 미셸리가 회의를 마무리하며 한국어와 불어를 오가며 말을 꺼냈다. “가장 민감한 문제였던 COC 완화 건은 전 세계 라이센씨들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규정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지만 촉박한 제품개발 일정과 론칭 스케쥴로, 모든 제품의 사양과 광고들을 일일이 컨펌 받고 진행하기 어려우니, 일단 한국 측에서 먼저 진행하고 사후에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