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소설] 인식의 싸움 105. 모델 선발 대회(13)

다음 날 오전 간단한 일정과 함께 본선 진행사항에 대해 본격적인 회의가 진행되었다. 신팀장은 이벤트 대행사가 제시한 두터운 큐 시트를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며 동선과 시간을 일일이 체크하였다. 점심시간이 다 될 때까지 폭풍 같은 미팅에 모두들 지쳐가고 있을 즈음에 신팀장의 휴대폰이 계속 울렸다. 누나였다. 신팀장은 중요한 회의가 방해가 되어 휴대폰을 받지 않고 껐다가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누나에게 전화를 하였다. 전화기 넘어 다급한 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이리 전화를 안받아?”

  “응, 중요한 회의 중이라서…”

  “어머니 상태가 좋지 않으셔, 빨리 병원으로 와야겠어.”

  “뭐라고? 여기 지금 대관령인데 어쩌지? 오래 걸릴텐데…”

  “아무튼 빨리 와!”
       
  신팀장은 오후 나머지 일정을 조윤희와 허진희에게 맡기고 한 달음에 차를 몰아 병원으로 향했다. 4시간이 되어서야 병원에 도착한 신팀장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수술 동의서였다. 어머니의 병세가 호전되는 듯하여 그 동안 안심하였는데, 어제부터 갑자기 악화되며 의식을 잃으셔서 이제는 최악의 수단으로 수술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일단 의사는 수술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니 걱정 말라고 안심시켰지만, 문제는 체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어머니가 마취에서 깨어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으므로, 보호자의 동의 없이는 수술을 진행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신팀장은 어쩔 수 없이 동의서에 싸인을 하였고 급히 수술이 시작되었다.
   
  수술이 시작된 지 채 한 시간도 안되어, 갑자기 의사가 나오며 보호자를 불렀다. 신팀장은 의사의 인도에 따라 수술복에 마스크를 하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테이블 위에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 해부했던 개구리 마냥 어머니가 배를 활짝 벌리고 누워있었다. 신팀장은 충격적인 그 모습에 고개를 돌리며 차마 더 이상 눈을 어머니 쪽으로 돌릴 수가 없었다. 그러자 의사가 다시 신팀장을 수술대로 이끌며 어머니 바로 앞에 그를 세우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열어보니 문제가 심각합니다. 처음엔 위 천공만 막으면 될 꺼라 생각했는데, 이것 보세요. 장들이 다 누렇게 녹아 들었어요. 이 썩은 장을 잘라내지 않으면 아무리 위만 수술한다 해도 살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보호자의 판단이 필요합니다.”

  푸른 마스크 속에 가려진 신팀장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보호자분! 빨리 결정해야 합니다. 이것 다 수술할까요?” 의사가 다시 재촉하였다.

  “네… 그렇게 하세요.” 신팀장은 절망적으로 말하고는 수술실을 빠져 나왔다.
       
  어려운 수술이었는지 그 후 7시간이 지나도록 수술은 끝나지 않았다. 수술 대기실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는 신팀장은 수술대 위의 어머니 모습을 머리에서 지울 수가 없어 계속 멍하니 시계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8시간이 지나서야 집도의가 나와 말했다.
  “수술은 아주 깨끗이 잘되었습니다. 힘든 수술이었는데도 환자분도 잘 견디시더군요. 이젠 좀 기다리며 지켜 봅시다.”
      
  회복실에서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진 어머니를 본 것은 새벽이 다 되어서였다. 다행히 그 날은 제헌절이라서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되어, 신팀장은 회사 일에 신경 쓰지 않고 그 동안 바빠 자주 오지 못했던 어머니 곁을 지킬 수가 있었다. 산소 마스크에 의존하여 미약한 숨을 내쉬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과 몸은 온통 퉁퉁 부어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손을 꼭 잡은 신팀장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어머니는 마취에서 깨어날 줄을 몰랐고, 생명보조장치에 가녀린 삶을 메달아 뒀던 그 한 숨조차도 거두며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다. 어쩌면 깨어나지 못한 것이 나았을지도 몰랐다. 수술자국으로 프랑켄슈타인처럼 온몸이 찢기고 꿰매여져 퉁퉁 부어 만신창이가 된 몸에 고통의 신음을 하실 어머니가 아니라, 아무런 고통도 모르고 편안하게 떠나신 게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고 신팀장은 스스로를 위안했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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