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소설] 인식의 싸움 27. 시장조사 업무(14)

“그러니 시간 많은 네가 해야지. 아니 이건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잘 들어봐. 이팀장은 어차피 김상무 사람이야. 그리고 자신이 출시한 브랜드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 하려고 들지 않아. 그래서 이제부터는 이팀장 몰래 준비해야 하는 일이 필요하단 말이야. 난 지금 우리회사가 이 정도로 어려워진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김상무와 이팀장 때문이라고 생각해. 아미앙떼처럼 고보습 화장품은 이제 아무나 다 만드는 시대라고. 콜마 코스맥스 같은 데서는 그보다 더 좋은 제품도 돈만 가지고 오면 마구잡이로 찍어내고 있어. 그런데 이런 비차별적인 제품으로 시장에서 경쟁을 하려니 우리만 죽어나도록 힘든 거 아니냐?”

“알아, 나도 그 문제는 보고서에 여러 번 지적한 바 있어. 그런데 뭐, 아무도 새겨 듣지를 않더라고.”

“신대리, 너 진짜 멍청한 거니, 아니면 순진한 거니? 세상에 어느 누가 자기가 데리고 있는 팀원이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데 좋아할 사람이 있어? 아마도 네 의견은 사장님까지 가기가 쉽지 않았을 꺼야. 중간에서 이리 고치고 저리 고쳐서 왜곡된 보고가 갔을 거라고. 나야 네가 직접 보내주니까 그 동안 도움이 되었지만….”

“진짜? 설마…. 그 동안 이팀장님이 나를 얼마나 위해줬는데….”

신대리는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손을 저었다가, 문득 골똘히 생각을 하였다가 이내 다시 말을 이었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하다. 한 번도 아니고 수 개월 동안 지적된 사항이 전혀 피드백 되지 않는다는 것이 나도 너무 이상했거든. 이런…, 난 왜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지? 진짜 이팀장이 그랬다면, 비로소 이야기 앞뒤가 맞는 것 같네.”

그랬다. 그 동안 신대리의 보고서 중 아미앙떼에 대한 고객 의견 부분은 이팀장이 중간에서 자료를 빼고, 미사여구로 잘 포장해서 구두로만 보고한 것이었다. 이팀장은 영업과 상당히 연이 깊은 신대리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겉으로는 신대리에게 윗선에서 이 좋은 보고서를 알아 주지 않는다며 위로를 하는 한편, 뒤에서는 보고서를 왜곡시켜 왔던 것이다.

“이팀장, 이런 개자식…, 이걸 당장….”

순간 신대리는 비로소 모든 것이 이해가 됐는지, 욕을 퍼부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당장이라도 이팀장 집으로 뛰쳐나갈 듯한 기세였다.

“신대리 진정해, 이럴수록 더 잘 대처해야 해. 일단 앉아서 소주나 한잔 마시자.”

강소장은 신대리의 손목을 잡아 억지로 자리에 앉히며, 진정시키려고 술을 한잔 권했다.

“아무런 증거도 없고, 이건 순전히 우리 추측일 뿐이야. 설령 사실이라 해도 우리는 어쩔 도리가 없어. 그러니 이제라도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좋은 방법을 강구해야 되지 않겠냐, 응?”

“휴~,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리고 머리 맞댈 필요도 없다. 방법이라면 그 동안 내가 생각한 게 많거든. 그 동안 나도 너무 안일해서, 솔직히 될 데로 되라는 식으로 계획만 가지고 있었지 직접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그 언젠가를 위해 준비는 해왔다고.”

신대리는 그 동안 시간을 소일하면서, 나름 대로는 새로 나온 브랜드, 포지셔닝, 마케팅 사례집 등 다양한 마케팅 책을 틈틈이 사서 읽어 왔으며, 생산성 본부나 마케팅연구회 등에서 실시하는 마케팅 교육에 자비를 내서라도 참가하는 등 자신만의 마케팅 로직(Logic)을 쌓아왔다. 그러면서 읽었던 책과 교육 받은 내용을 다시 정리해 보며, 이를 아미앙떼 사례와 비교해 보기도 했고, A사의 1등 브랜드의 성공 사례를 마케팅 원칙에 대비해 보기도 했다.

그리고 상당부분 소일거리로 소설 책도 많이 읽었는데, 대부분이 열국지, 삼국지, 초한지, 손자병법 등 전략이 살아 숨쉬는 고전들을 읽기 쉽게 소설로 쓰여진 것들로써, 이런 소설들은 그도 모르게 전략적 마인드를 넓히는 뿌리 깊은 토양이 되있었다. 그리고 그는 책을 단순히 읽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반드시 회사와 경쟁사를 대비해 보며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그 결과 그는 모든 마케팅 전략이 김상무와 이팀장의 독단에 의해 비체계적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무엇이 문제점인지를 정리할 수 있는 자료들을 갖출 수가 있었다. 단지 전 직장의 허지점장에게 받았던 상처를 이팀장에게 또 다시 받을지도 모르는 두려움이 그를 여지 것 나서지 못하고 기다리게 한 것이었다. 문득 그는 전 직장에서 허지점장에게도 크게 뒷통수를 맞았던 일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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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점장의 개인적인 일에 대한 거절뿐만 아니라 대림대리점 사건 이후로 지점장의 나에 대한 악의적인 복수는 더욱 심해졌다.

일반적으로 가전영업 담당자는 4~5개의 대리점을 맡으며 담당 대리점들을 밀착관리하게 되어 있었으나, 지점장은 다른 담당자와 문제가 생겨 처치곤란이거나, 회사에 호의적이지 못한 대리점들만 골라 하나 둘씩 내게 떠넘기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나는 어느새 매출도 고만고만하고 문제도 많은 10개의 대리점을 맡게 되었다. 매출실적이 적다고 남들보다 두 배나 많은 대리점 수가 맡겨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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