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소설] 인식의 싸움 39. 마케팅 전략 조사보고(10)

지금도 나는 가끔 생각한다. 그때 내가 회사를 떠나지 않았다면, 그 때 지점장이 나를 한 순간이라도 보호해주었다면, 그때 내가 그 대형대리점을 담당하지 않았다면… 과연 내가 대기업에서 계속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을까?

어찌 되었건 나는 분명 그때 지점장을 극복하지 못하고 도망친 것이었다. 한 순간의 젊은 혈기로 무책임하게 회사를 떠난 나도, 자신의 위기를 모면하려고 책임을 전가한 지점장도, 모두 책임감 없는 사람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나 하나를 보고 따르며 법인으로 전환하고 노력했던 작은 대리점 사장들을 버렸고, 그 지점장은 한 젊은이의 꿈과 미래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말았다.

퇴직처리를 하기 위해 본사 인사팀을 갔다가 나는 우연히 영업부에서 같이 근무했던 선배를 만났다. 당시 TFT에 차출되어 본사 건물에서 일했던 선배는 내가 회사를 그만둔다는 말에, 너처럼 성과가 좋은 사람이 왜 회사를 그만두냐며 이유를 집요하게 물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신세한탄처럼 지점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회사를 떠났다. 그런데 그후 1년 후에 나는 입사동기로부터 깜짝 놀랄 소식을 들었다. 지점장이 좌천되었다가 회사를 떠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만났던 선배가 소속되었던 곳이 영업혁신 TFT였음을 나는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아마도 내가 떠나면서 했던 말이 시발이 되어 영업혁신 TFT에서 구태적인 관행과 비합리적인 활동들에 대한 대대적인 혁신을 단행한 결과였으리라.

결국 뿌린대로 거둔다고, 지점장이 나를 죽임으로써, 그도 함께 죽을 운명이었던 것을 몰랐던 것이다. 어쨌든 그때 나는 그저 남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었던 힘 약한 사원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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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사장실이 가까워질수록 심장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으며, 오히려 차분해짐을 느꼈다. 신대리는 더 이상 나약한 신입사원이 아니었다. 과거의 아픈 기억을 밑거름 삼아 홀로 준비하고 성장할 수 있는 뿌리가 단단한 어엿한 한 그루의 나무로 자라있었다. 그때 갑자기 다급한 지대리의 목소리가 귓속 깊숙이 또렸하게 파고 들었다.

“어디 가셨었어요? 휴대폰도 받지 않고.... 사장님이 몇 번 찾으셨어요. 아무래도 어제 밤 주신 그 보고서 때문인 것 같아요. 그 동안 힘들게 준비한 것만큼 잘 하시길 바래요.”

신대리는 애써 미소 지으며 그녀를 따라 사장실로 조심스레 들어갔다. 사장실 한 쪽 소파에 이팀장, 김상무, 최상무가 함께 앉아있었다. 들어서는 순간 여덟 개의 날카로운 시선들이 신대리에게 급격히 쏠리는 걸 그는 느낄 수가 있었다. 신대리는 찰나의 순간이지만 세 사람의 시선에서 희비가 엇갈리는 감정의 교차를 읽을 수 있었다.

“자네가 신대리인가?”

“네, 사장님.”

“자네가 직접 이 보고서를 작성한 것인가?”

“네.”

“그럼, 이리 와서 앉아보게.”

신대리가 최상무 옆의 빈자리를 찾아 앉을 때, 최상무의 표정에서 마음 깊은 응원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신대리는 점점 더 자신감이 생겼다. 이미 많은 시간 동안 충분한 준비를 하지 않았던가?
“이 보고서를 내게 상세히 설명해보게. 특히 아미앙떼의 문제점에 대해 어떠한 가감도 없이 사실대로 말하길 바라네.”
“네, 사장님.”

그때 갑자기 신대리의 말을 이팀장이 가로 막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장님, 이 보고서는 상사인 저와 김상무께서 아직 보지 못한 것입니다. 아무래도 개인적인 의견일 수도 있으니, 먼저 제가 검토한 후 다시 보고하겠습니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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