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소설] 인식의 싸움 18. 시장조사 업무(5)

며칠 후, 신대리는 신과장으로부터 먼저 전화를 받았다. 그렇잖아도 문선배에게 받은 신과장 전화번호를 책상 앞에 붙여놓고 매일 전화해야 하는데 하는 마음만 있었지, 그 동안 안테나 매장의 선정 및 운영 방안에 대한 계획서를 작성하느라 미처 연락을 취하지 못하고 있었던 참이라, 그의 전화가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신대리는 오늘이라도 당장 만나고 싶은 마음에, 만사를 제쳐 놓고 오후에 약속 장소인 명동의 대형 화장품전문점 앞으로 나갔다.

신과장은 약 170cm 밑으로 보이는 작은 키에 검은 색 뿔테 안경을 끼고 있었으며, 초겨울 날씨에 벌써 추위를 느끼는지 긴 회색 코트를 입고 있는 모습이, 마치 이불을 덮고 있는 것만 같아 가뜩이나 작은 그의 키를 더욱 작아 보이게 했다. 신과장은 전화로 설명들은 인상착의만으로도 충분히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개성 있는 모습이었다. 신대리는 아무 내색 않고 환한 웃음과 함께 손을 내밀어 인사를 했다. 둘은 악수로 서로의 따스한 온기를 나누고는, 바로 가까운 커피샵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리에 앉자 약간의 인사 말과 소개가 이어졌다. 신과장은 신대리와 한글로는 같은 신씨였지만 평산이 본인 신(申)대리와는 달리, 흔치 않은 거창 신(愼)씨였다. 인사가 끝나고 어느 정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마치자 거두절미하고 신과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신대리님 얘기는 문사장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그 동안 저도 타사 정보에 대해 필요한 게 많았는데, 문사장님 얘기 듣고 참 잘됐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신대리님 만나기 전에 나름대로 계획을 만들어 봤는데, 마침 저랑 안면이 있는 H사의 이과장도 좋다고 해서, 일단 셋이 한번 동지를 모아보면 어떨까 하네요.”

말을 마치자 바로 신과장은 가방에서 서류 하나를 신대리에게 건넸다.

“네~! 벌써부터 이런 계획까지….”

신대리는 서류를 보며, 역시 대한민국 일등 화장품 회사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서류에는 앞으로 공유할 정보 내용 및 함께 참여할 회사와 정보공유 기준 등의 기본 방침들이 간단한 양식과 함께 적혀 있었다. 하나도 빼거나 더할 게 없는 듯 잘 정리된 내용을 보고 신대리는 아무 이견 없이 흔쾌히 동의 하였다.

“매우 좋습니다. 역시 다르시군요. 과장님 계획대로 가능하면 주요 장업사를 모두 참여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마침 저희 회사 출신 중에 다른 회사로 옮긴 사람들이 꽤 있으니, 그쪽은 제가 연결해 보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모든 회사가 참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네, 잘됐네요. 저도 H사 이외에 몇 군데 더 연락할 수 있으니까, 그럼 같이 모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해서, 이번 달 마지막 주 금요일 오후 4시에 만나기로 하죠. 첫 만남이니까, 우리 모임에 대한 취지와 운영 방침 등을 합의하고, 술도 함께 하며 서로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네요.”

“좋습니다. 근데 괜찮으시다면, 오늘은 둘이 한잔 하죠. 좀 출출하기도 하고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둘은 커피샵을 나와 호프집을 찾았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연 집이 그리 많지 않아, 두 사람은 근처 가까운 치킨집에 들어가 치맥을 하였다. 신과장은 신대리와 같은 평산 신씨는 아니었지만, 공교롭게도 같은 대학의 2년 선배였다. 신대리는 경영학과인 반면 그는 경제학과를 졸업해서 바로 A사 마케팅부에 취직하여 남들보다는 1년 빠르게 올해 과장으로 진급하였다. 아무래도 A사는 시장 정보의 중요성을 일찍 인식하고 있어서 인지, 시장조사팀의 주요 인재인 신과장을 높게 평가하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여러 가지로 다른 면이 있었다. 외형적으로 신대리는 키가 큰 편이라, 비교적 작은 편인 신과장에 비해 유난히 더 커 보였고, 성격은 신과장이 꼼꼼하고 치밀하여 계획적이고 규칙적인 반면에, 신대리는 외향적이고 즉흥적이지만 강한 문제의식과 시장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서로의 다른 면이 공통의 목표를 위해 상호보완적일 수가 있어서 그런지, 두 사람은 묘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그 날 하루의 만남만으로도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마치 몇 년을 거슬러가 사귀어 온 것처럼 친해질 수 있었다. 둘은 늦은 밤까지 자리를 두 차례 더 바꿔가며, 학창시절, 직장생활, 화장품 시장현황 등 다양한 얘기를 나누었고 향후 성공적인 모임을 만들기 위해 힘찬 건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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