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6개월만에 3조원을 날렸다. 그 이유는 장사를 못해서가 아니다. 정치 리스크 때문이다. 롯데마트 이야기다. 사드 보복 6개월만에 결국 롯데마트는 손을 들었다. 14일 롯데마트는 중국 내 롯데마트 처분을 위한 매각 주관사로 골드만삭스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중국 내 112개 매장 전체 매각이 목표다.
#롯데마트·현대자동차·신세계가 주는 교훈
롯데마트는 2007년 네덜란드 마크로 매장 8개를 인수하면서 중국에 진출했다. 인수비용만 1조 2000억원이다. 중국은 사드 배치 보복으로 한한령(한한령)을 내렸고, 부지를 제공한 롯데는 직격탄을 맞았다.
올해 3월부터 매장 영업정지가 시작됐고 전체의 77%인 87곳이 문을 닫았다. 올해 2분기 매출액은 210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 2840억원의 10%에 불과한 수치다. 연말까지 매출 감소액이 1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이다. 게다가 매장 철수에 따른 위약금 액수도 만만찮다. 계약기간이 10년 가까이 남은 곳이 많아 매각 시에 이 조항도 넣을 것이라고 한다.
현대자동차의 중국 합작법인인 베이징현대는 현지 공장 5곳 중 4곳 가동이 일주일간 중단됐다. 이마트는 지난 5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중국에서 이마트를 전면 철수하겠다”고 밝히며 중국 사업을 접었다.
# 화장품빅4 중국 의존도 너무 높다
3·3 한한령 조치로 화장품 매출은 급감하고 영업이익은 반토이 난 상태. 지난 5년간의 중국 특수에 가려진 화장품기업들의 민낯이 낱낱이 드러난 게 2분기 실적이다. 문재인 정부 등장 후 잠시 해빙 모드 기대감도 사드 4기 임시배치 결정으로 수교 25주년 행사를 따로따로 치르면서 물 건너간 상태다. 이젠 근거가 약한 희망 섞인 기대를 내려놓아야 할 듯싶다. 주가도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 빅4 모두 목표주가를 조정했다.
아모레퍼시픽의 2016년 해외 매출 비중은 28%다. 이중 중국발 매출이 65%, 아세안 매출이 20% 내외로 추정된다. 홍콩 포함하면 중화권 매출이 73%라는 게 동부증권의 분석이다. 지난해 매출액 6.7조원 중 1.4조원이 중화권 매출액이다. 매장만도 설화수는 106개, 라네지 593개, 마몽드 1929개, 이니스프리 334개, 에뛰드 56개에 달한다.
LG생활건강은 2016년 해외사업 매출은 전체 대비 15.3%다. 이중 중국발 매출 비중이 40%로 중국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후·숨·오휘 등 럭셔리 브랜드 위주의 영업 전략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두 회사의 2분기 대비 3분기 실적 예상은 아모레퍼시픽은 ‘바닥은 아직’, LG생활건강은 ‘바닥 근접’으로 평가된다.
중국시장에 경쟁적으로 진출했던 ODM의 빅2도 사드 보복 피해를 비껴가지 못했다.
코스맥스의 올해 상반기 중국 매출은 중국상하이 -37%, 광저우 -27%로 감소했다. 3분기에는 중국 소재 대리상과 도매상들이 보유한 한국산 브랜드의 재고가 소진돼 다소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사드 여파로 코스맥스는 주요 투자처를 중국에서 동남아로 방향 전환했다. 6월에 태국 방콕에 법인을 설립, 상하이·광저우·미국·인도네시아에 이은 다섯 번째 해외법인이다. 태국 1위 화장품회사와 손잡고 제품 공동개발과 마케팅을 벌일 예정이다.
한국콜마는 북경콜마의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이 예상된다. 매출 비중은 10%로 크지 않아 영향은 제한적이다. 내년에 상해 무석법인이 가동되면 업무 효율이 개선되어 빠른 이익 기여를 기대하고 있다. 대신 작년에 인수한 미국 PTP사와 캐나다 CSR코스메틱솔루션이 올해 상반기 실적 개선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PTP는 331억원, CSR은 147억원의 실적을 기록했다.
화장품 빅4 모두 중국 매출 하락세로 고전하는 상태. 게다가 중국에 상당한 투자를 한 상태여서 롯데마트의 사례가 결코 남일 같지 않다.
# 중국 보복에 정부는 노 액션, 기업은 멍들고…
중국 현지 분위기도 심상찮다. 교민들이 모이면 중국 떠날 이야기만 나눈다고 한다. 상하이 교민신문 ‘상하이저널’에는 하노이나 호찌민 아파트 광고가 실리고 여행업체는 베트남 시장조사 투어를 보낸다. 베이징의 교민 자녀가 다니는 베이징 한인타운 왕징의 한국국제학교는 최근 초등학교 과정 3개반을 2개반으로 줄였다. 덩달아 왕징의 아파트 집값도 한국인 철수로 뚝뚝 떨어지고 있다는 보도다. ‘탈(脫) 차이나, 고(go) 베트남’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사드 보복으로 한국 기업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음에도 정부는 미지근하다. WTO 제소와 관련 청와대는 14일 “지금은 북한 핵과 미사일 도발 등으로 중국과 협력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며 “한·중간 어려운 문제에 대해선 전략적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며 해결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13일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WTO 제소를 옵션으로 가지고 있다”고 발언한 것과 엇박자다. 교묘한 중국 정부의 이중 플레이에 한국 기업들의 피해가 늘어나고 있음에도 정부는 ‘말만 할 뿐 행동이 따르지 않는(only talk, no action)' 눈치보기로 일관한다.
센카쿠 열도 영유권 분쟁으로 인한 중국의 보복을 받은 일본 기업들은 ‘차이나 플러스 원(China plus one)’에서 ‘아세안 온리(ASEAN only)'로 방향 전환했다. 중국 비중을 꾸준히 줄여나가 이제는 중국 정치 리스크에 휘둘리지 않는다. 최근 중국 화장품 시장은 ’K-뷰티 하락‘, ’J-뷰티 귀환‘의 엇갈린 그래프를 보여주고 있다.
정부의 기업 피해 실태 조사나 지원 대책 마련도 없는 상태에서 기업 개별 대책은 불가피하다. 대부분의 화장품기업들은 ‘탈 차이나 고 아세안’으로 수출다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은 12일 오송박람회 현장 간담회에서 “화장품산업은 미래 사회 핵심 산업이 될 것”이라며 “화장품산업이 도약할 수 있도록 연말에 종합발전계획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드 보복으로 당장 생존을 위협받는 화장품기업들에겐 ‘공허’하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