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구조조정’ 칼바람에 성장 동력 까먹을까?

[K-뷰티의 빛과 그림자] ②로드숍 폐점, 중국시장 변수→매출 감소→구조조정의 끝은 ‘사람 자르기’
성과 지향적 기업의 저신뢰가 일으킨 ‘저성장의 늪’

배가 고프면 입이 바빠진다. 부진 원인을 놓고 손발은 스톱 되고 입만 벙긋한다. 대기업은 권한 위임을 했다는데도 정작 책임지는 임원은 없다. 왜 의사결정 시스템은 늘 CEO의 사인을 필요로 하는지? 중소기업은 대표의 전횡으로 끌어오다 매출만 떨어지면 임직원은 괜한 피해의식에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그러곤 불황에 경기 흐름 하강곡선에 매출이 신통찮으면 인원 감축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싸늘한 분위기의 요즘 화장품업계가 그렇다.


카톡방과 페이스북에는 구인과 구직이 혼재한다. 하지만 눈치 빠른, 나이가 든 임직원의 고민은 깊어간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이 2년 동안 늘어난 인원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들려온다. 일대일 면담을 통해 상당수 인원 정리에 나섰다는 업계 이야기다. 일부 직원들은 세포라 스카웃을 통해 갈아탄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GS리테일은 ‘랄라블라’가 유일한 리스크로 판단돼 임원이 그만두고 타 기업 인수를 타진했으나 거절당했다는 후문이다. 지금은 매장 축소를 방기하는 실정이다.


대기업이 이럴진대 중소기업은 오죽 할까. 한때 잘 나가던 300억원 대 매출과 1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리던 A업체는 요즘 죽을 맛이다. 매출은 정체되고, 그동안 홈쇼핑의 단맛에 취해 타 채널로의 확장을 소홀히 한 탓이다. 그러다보니 회의 때마다 사장의 ‘아이디어’ 내라는 호통은 커지지만, 정작 그의 갑질과 기행적 경영으로 임직원들은 울상이다. 매달 월급 조달하는 게 고민이 됐으니 그동안 잘 나갔던 시절은 ‘옛날이여’가 됐다.


화장품업계에 구조조정 소리가 들린다. 로드숍이 1차 타깃이다. 2~3년 전부터 로드숍의 가맹점 수 축소는 화장품업계 시장점유율에 밀리면서 가시화됐다. 공정위 조사 화장품 프랜차이즈 가맹점 수는 4,440개(‘16)→4373개(’17)이었다가 작년에는 20% 감소한 3500여 개 수준으로 추정된다. 야심차게 진출했던 중국 화장품시장도 더페이스샵과 토니모리, 클리오가 잇달아 철수를 결정하면서, 비즈니스 모델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그러다보니 프랜차이즈, 마트, 슈퍼마켓 등에 진출한 가맹점사업자, 직영 직원들의 퇴사가 이뤄졌다. 당연히 알바 취업문도 얼어붙었다. 지난달 발족한 전국화장품가맹점연합회는 5개 화장품(이니스프리, 아리따움, 더페&NC, 토니모리, 네이처리퍼블릭) 가맹점주로 구성됐다. 하지만 ‘파이’를 키우지 않고서는 어느 타협안도 양쪽 모두 도출하기 쉽지 않다. 수십 년간 두꺼워진 계약서만큼 지루한 법정다툼 내지 토니모리가맹점주협회가 벌인 ‘실력행사’ 두 가지 뿐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매각(스킨푸드)하든지.


로드숍의 임직원들도 전직 또는 창업했다. 유명세를 탔던 사람들은 신규 브랜드(화장품에 새로 진입하는 대기업 화장품사업부)로 또는 규모가 작은 알짜기업 등으로 이직했다. 임직원들의 알음알음 직장 알아보기는 일상이 됐다. 


H&B숍도 매장 축소 분위기다. 작년만 해도 올리브영에 대적하기 위해 롯데쇼핑의 롭스와 GS리테일의 랄라블라가 그룹 내 매장에 일거에 수백 개 화장품을 입점시키겠다는 확대 전략을 폈다.


하지만 올해부터 분위기가 반전됐다. 증권사 애널리스트 출신이 새로 대표에 취임한 올리브영이 1100여 개에 달하던 매장을 ‘점포당 매출액’이 떨어지는 100여 개 매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애초 1500개까지 늘리려던 계획을 아예 접은 것이다.



올해 10월에 시범매장을 오픈한다는 세포라 진출도 ‘H&B숍의 포화’라는 우려를 낳았다. 세포라의 목적이 밖으로는 럭셔리 뷰티숍을 오픈한다는 계획이지만, ‘K-뷰티를 활용한 새로운 기회 모색’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한국취재 36년 경력의 영국 ‘가디언’ ‘더타임스’ 한국특파원 마이클 브린은 최근에 펴낸 ‘한국 한국인’에서 “한국의 비즈니스 문화에는 가족의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 간의 신뢰수준이 극도로 낮은 특성이 있다”고 썼다.


한 중소기업 해외본부장은 “오너는 간부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매출이 줄어드는 위기 상황에서도 성과를 꽤 내온 임원의 말을 믿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십여 년 간 동고동락 했어도, 결국 대표는 믿고 싶은 것만 본다. 정작 공동운명체인 임직원의 말을 무시한다”고 말한다.


마이클 브린은 “저신뢰도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비즈니스가 소규모이며 가족에 의해서 운영되고, 3세대를 지속하면 운이 좋은 편이다”라고 말한다. 실제 일부 중소업체들은 젊은 기업주가 아버지와 동일한 관심을 갖기 보다는 코스닥 상장 또는 매각을 통해 딴 생각을 품는다. 이러다보니 중소기업들이 가족이 아닌 전문경영인을 고용하는 신뢰의 도약을 못해 성장 문턱에서 주저앉는 경우가 많다. 


지난 2년여 매출 부진을 겪고 있는 아모레퍼시픽그룹도 저신뢰가 기업문화에 깔려 있다. 전직 아모레퍼시픽 출신들은 “AP의 기업문화는 톱-다운에 익숙해서, 최종적으로 서경배 회장의 결재를 기다린다. 그러다보니 시장의 변화에 늦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다른 관계자는 “권한 위임을 해도 ‘장군’이라 할 책임자들이 책임을 안 지려고 한다. CEO의 결재를 얻거나 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소신과 능력이 아닌 ‘책임회피’다”라고 꼬집는다.


1997년 IMF 이후 한국기업들은 불황 후 구조조정, 인력감축을 ‘관행화’ 시켜 경영방침으로 만들었다. 조금만 경기가 불안하다 싶으면 매출 하락→구조조정이라는 뻔한 공식을 들이댄다. 기껏 인재들을 뽑아놓고는 써먹지도 못하고 내친다.


이는 한국의 문제가 아닌 기업의 문제다. 기업은 인재를 키우고, 인재는 회사를 성장시킨다. 그런 공식이 없다. 기업은 성과 지향적이면서도 정작 성공에 대한 보상이 미미한 반면 성과를 달성하지 못한 실패에 대한 처벌은 가혹하다. 인원을 줄이는 게 ‘구조조정’의 전부가 되고 있다. 왜들 그럴까?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니 결국 모든 게 ‘갑질’로 귀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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