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대한화장품협회에는 ‘나’와 ‘우리’, 누가 더 많을까?

서경배 회장, “규제 혁신 통한 글로벌 스탠다드 체계 구축” 강조...‘미래 청사진’에 산업계 폭 넓은 고민 필요



비즈니스는 무한(infinite) 게임이라고 한다. ‘나에게 가장 좋은 게 무엇인가?’ 보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게 무엇인가?’라는 기업이 많은 비즈니스는 게임 전체에 좋은 선택을 해나간다. 이른바 ‘회복탄력성’과 ‘더 나은 미래’다. 

22일 대한화장품협회 제74회 정기총회가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렸다. 서경배 협회장은 개회사에서 “한국 화장품은 뛰어난 기술력과 혁신성으로 세계인에게 사랑받으며 견고하게 성장해왔다. 하지만 ①최근 경기 침체 등 대외 환경의 불확실성이 가중됨에 따라, ②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성장 동력을 다변화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현 업황을 진단했다. 

이어서 그는 “③한국 문화에 대한 세계의 높은 관심을 지혜롭게 활용하여 ④K-뷰티의 재도약을 이룰 수 있도록, 올해 사업들을 중점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서 회장의 말은 화장품산업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려면 체질 변화가 시급하며, 한류 붐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제도 개혁이 요구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협회의 2023년 5대 사업 방향도 ▲화장품 제도 혁신을 통한 글로벌화 ▲K-뷰티 글로벌 수출 경쟁력 강화 ▲친환경 지속가능 미래 실현 ▲소비자 소통 강화 ▲교육 및 업무 효율성 증대로 초점을 맞췄다. 



모두 ‘나’만 생각해선 극복하기 어려운 과제들이다. 지난날 화장품산업은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 매출 목표 달성이 초미의 관심사이자 코스닥 상장으로 성공 가도를 치달았다. 하지만 중국 특수가 영원하리라고 생각했다면 ‘나’만 알고 ‘우리’를 내버린 행태를 저지른 기업이 많았다는 반증이다. 

화장품 불경기는 이미 2017년 사드 보복 이후 6년째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전에 벌어놓은 것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코로나 3년은 곳간을 거덜나게 만들었다. 이젠 ‘R의 공포’가 죄어오는 형국이다. 

비즈니스 역사에서 기업의 평균 수명이 1950년대는 61년이었는데, 오늘날엔 불과 18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매출 목표’만을 생각한 기업들은 사라졌고, ‘비즈니스 미래’를 고민한 애플 같은 기업은 산업을 성장시켰다. 

화장품산업에서 ‘나’가 아닌 ‘우리’를 고민하는 곳은 사실상 대한화장품협회가 유일하다. 1945년에 협회가 창립될 정도로 비즈니스의 미래를 고민했었다. 산업 규모가 작았을 때는 각자도생이 과제였지만 오늘날 수출 TOP 3위의 글로벌 위상에선 ‘더 나은 미래’가 화두가 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K-뷰티와 K-푸드의 최근 행보가 비교된다. 식약처의 규제혁신 100대 과제 중 K-뷰티는 3개, K-푸드는 51개다. 규제혁신에 힘입어 K-푸드는 올해 135억 달러(+14.1%) 달성을 위한 ‘K-Food+ 수출확대추진본부’를 출범시켰다. 또 ‘K-푸드테크 발전협의회’도 발족시켰다. 

이에 반해 K-뷰티 수출은  92억달러(‘21)→79억달러(’22)로 13% 역성장했다. 올해 수출도 겨우 현상 유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렇다고 침체에 빠진 K-뷰티의 업황 개선을 위한 가시적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대한화장품협회가 내건 ‘화장품 제도 혁신을 통한 글로벌화’의 강력한 추진이 요구된다. 이명규 부회장은 “화장품 업계 CEO 규제혁신 간담회(7월)→국회 K-뷰티포럼 세미나에서 화장품 규제혁신 사항 발표(9월) 등 의견 수렴을 진행했다”고 보고했다. ▲네거티브 체계 전환 ▲광고자율분쟁조정기구 도입 ▲글로벌 안전관리 체계 도입 ▲글로벌 스탠다드 품질경영체계 구축 등은 기업의 이해관계가 아닌  ‘우리’라는 측면에서 생각해야 할 추진 과제들이다. 

이날 총회는 ‘역시나’ 주요 기업 수장들은 보이지 않았다. 평소 안보이니 ‘나타나는’ 자체가 뉴스거리가 될 정도다. 4년만의 대면 총회여서 반가운 얼굴도 보였지만 풍성하진 않았다. 회의는 일사천리로 2022년도 사업보고 및 결산에 이어 2023년도 사업계획과 33억2천만원(+5.2%)의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임원 가운데 8년여 ‘화장품 제도’ 개혁에 애썼던 이명규 부회장이 퇴임했다. 새로 아모레퍼시픽 연재호 고문이 선임돼 협회 상근부회장으로 일하게 됐다. 

이임인사에서 이명규 부회장은 “…감사합니다”로 울컥 말을 잇지 못하고  화장품산업과의 인연을 마무리했다. 기자가 알기엔 많은 이들과 소통하며 ‘제도 개혁’이라는 중책을 맡아 ‘우리’를 고민한 그가 결실을 맺지 못한 게 아쉬웠다. 

신임 연재호 상근부회장은 중국에서만 19년을 근무한 중국통으로 알려졌다.  △대한화장품협회 중국위원회 위원장 △중국위생부 화장품제도표준화위원회 위원 △중국향료향정화장품공업협회(CAFFCI) 법규위원회 위원 △주중미국상공회의소(AmCham China) 화장품분과위원회 위원 △중국보건협회(CHCA) 화장품분과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면서 중국 화장품 법·제도 등에 대해 정통하고 두터운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편 대한화장품협회는 화장품산업 발전에 기여한 인사들에게 △보건복지부장관 표창 10명 △식약처 표창 8명 △대한화장품협회장 감사패 등을 수여했다. 

‘나’를 생각한 기업들은 불참했고, ‘우리’를 생각해야 할 때라고 믿은 기업들은 조용한 행보를 보였다. 이게 2023년도 K-뷰티의 현실이다. 창립 80년이 되는 2025년엔 더 나은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문득 ‘조선화장품협회’와  KCA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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