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식품의약품안전처(처장 오유경)의 ‘식의약 규제혁신 100대 과제’ 중 화장품은 3개에 불과하다. 대신 식품은 절반을 넘는 51개나 되며 △의약품 24개 △바이오의약품 3개 △의료기기 12개 △의약외품 1개 △한약 1개 등이었다.
화장품 관련 규제 과제로는 ①천연·유기농 화장품 인증제도 민간주도 전환(‘23.12 폐지) ②화장품 원료 사용에 대한 보고 의무 폐지(’23.12 개정) ③화장품 책임판매관리자 자격 요건 완화(‘23. 12 시행규칙 개정) 등이 선정, 시행될 예정이다.
천연·유기농 화장품 인증제도는 정부에서 인증기관 지정·운영한 것으로 국제 조화 및 산업 수준 향상에 따라 자율성 요구에 맞춰 다양한 인증기준 활용으로 시장 진입을 용이하게 하고, 표시·광고의 자율성을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사실 국내의 천연·유기농 인증 기준은 유럽의 COSMOS에 비해 낮은 수준인데다 수출기업에겐 해외 인증 취득이 유리하다는 지적이 많아 효용성이 제기됐었다. 실제 인증 과정에서 기업의 비용 부담이 크다는 불만도 있었다.
두 번째로 화장품 원료 사용에 대한 보고 의무는 화장품 유통·판매 전 제품 사용 원료 목록을 식약처에 사전 보고하는 제도다. 이는 지난 2018년 12월 ’화장품법 시행규칙‘을 개정하면서 2019년 3월 도입됐다. 당시 식약처는 “개정안을 통해 화장품 제조에 사용하는 원료 및 제품에 대한 안전관리가 한층 강화될 것”이라고 개정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업계는 출시 전 원료 목록 보고는 사전규제라는 비판이 많았다. 즉, 제품의 로트 단위까지 일일이 사용할 원료에 대해 유통·판매 전 식약처에 사전 수시 보고하라는 규제에 반발이 적지 않았다. 사후 보고보다 사전 보고 절차가 복잡하고 인력과 시간, 노력을 더 쏟아야 한다는 게 업계의 고충이다.
원료 목록 보고 의무로 기업의 전담인력 충원 부담 및 영업기밀 유출 우려 등이 대한화장품협회를 중심으로 제기됐으나 식약처는 원료목록 보고 시스템 개선과 보고된 정보가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될 수 없도록 명문 규정 마련을 이유로 도입했다. 당시 업계의 건의를 묵살하고 시행하다 불과 3년도 안돼 내년 말까지 폐지가 예정됐다.
세 번째는 ’화장품책임판매관리자‘ 자격기준에 맞춤형화장품조제관리사를 포함하면서 실무 경력 1년을 요구하는 규제였다. 이에 대해 조제관리사가 전문성을 가졌음을 증명하는데 실무 경력 요구는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내년 12월까지 화장품법시행규칙을 개정하면서 이를 삭제토록 했다.
현재 맞춤형화장품조제관리사 자격증 소지자는 5050명을 배출했지만 사실 극히 일부 대기업 외에 취업문이 좁다. 중소기업으로선 매장 설치와 자격증 소지자의 높은 연봉, 맞춤형화장품의 혼합·소분만으로 매출을 일으키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형편이다.
사실상 규제 개선이라고 했지만 기업 입장에서 ‘시간·비용 부담 절감’이나 미래 효과를 얻기에는 그닥 후련한 규제 철폐라고 할 순 없다.
타 분야 내용 중 화장품 기업이 관심을 가질 규제 개선 사례가 몇 개 눈에 띈다. 즉 ▲대마 성분 의약품 제조·수입 허용(의료목적으로 승인 수입→국내 제조·수입 허용) ▲PET 재질에 한하여 식품용기 재활용 허용→PE(폴리에틸렌) 및 PP(폴리프로필렌) 재질도 허용) ▲의약품의 e-label 단계적 도입(허가사항 변경 시 e-label로 실시간 변경) ▲식품 표시사항 QR코드 제공 확대(필수 정보는 크게 표시하고 나머지 정보는 QR코드로 제공) ▲건강기능식품의 스티커 처리 대상 확대(오·탈자 등 경미한 사항만 스키커 처리 가능→제조 연월일 등 날짜 표시를 제외한 안전과 관련 없는 사항은 모두 스티커 처리 허용) 등이다.
이들 규제 개선 사례를 화장품업계에도 적용해 개선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한편 대한화장품협회를 중심으로 현재 화장품법 규제를 사전관리체계→사후관리체계로 바꾸기 위한 제도 개선(‘화장품 제도 선진화 협의체’ 6월 10일 출범)이 진행 중이다. 이는 화장품산업의 체질을 선진국처럼 ‘자율과 발전’으로 변화시키려는 대담한 실험이다.
대한화장품협회 이명규 부회장은 “전 세계적으로 한류열풍으로 인한 화장품산업의 재도약 기회가 도래했다”라며 ‘규제 패러다임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①세계 수출 1위 달성, 혁신성장 동력 창출을 위한 규제환경 조성 필요 ②기업 자체 안전관리 역량 강화& 선진국 수준의 안전관리체계 필요 ③정부주도 관리에서 민간주도형 규제체계로 전환 필요 ④의약품 관리 체계에서 화장품 특성에 맞는 규제 체계로 전환 필요 등을 제안”했다.
오는 9월 2일 오후 2시 국회 K-뷰티포럼이 주관하는 ‘대한민국 화장품산업 현재와 미래’ 세미나가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이때 이명규 부회장은 ‘한류 확산과 한국 화장품 재도약을 위한 규제혁신’을 발표한다.
위기에 빠진 화장품산업의 체질 변화를 위한 규제 개선은 참여에 의해 완성된다. 화장품 업계 모두가 현장에서 느끼는 후진적 규제에 대한 의견을 기탄없이 제안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