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CNews 사설] 중국통 서경배 회장의 '메멘토 모리'

3분기 실적 후 싸늘해진 시장 분위기...증권사들 목표 주가 대폭 하향
2012년 ‘마몽드’의 위기 극복 사례 주목...마켓 4.0시대 반전의 묘수는?

K-뷰티 함대의 플래그십(flag ship) ‘아모레퍼시픽 호’가 위기다. 3분기 실적 발표 후 9개 증권사는 일제히 ‘어닝 쇼크’ ‘구조적 쇠퇴기’, ‘불투명한 청사진’, ‘시련의 계절’, ‘우려가 현실로’ 등으로 표현하며, 아모레퍼시픽을 진단했다. 목표주가도 대폭 하향 조정했다. 언론에서도 ‘AP의 총체적 위기’를 말하기 시작했다.


아모레퍼시픽의 부진 원인을 두고 업계는 말조심 하는 분위기다. 업계 내 맏형 노릇을 톡톡히 해온 터라 걱정의 시선과 함께 부진을 털고 일어서리라는 기대가 공존한다. 감히 이래라 저래라 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감정도 있다.


“거대 사옥 새로 짓고, 시총 2위 최고 주가 찍던 때가 불과 1~2년 전임에 비춰 분위기가 싸하다.” “국내야 중국인 관광객 때문이라곤 하지만 중국 현지 매출 하락은 의외다. 중국 로컬이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10년의 호황에 잠시 쉬고 재충전 하라는 소비자들의 권고다.” “따지고 들면 부문별로 부진 이유를 댈 수 있지만 그룹 전체가 부진하니 이유를 따질 수도 없을 지경이다” 등 조심스런 반응이다.


증권사 리포트에도 이런 분위기는 묻어난다. 52주 최저가를 경신해도 ’매수‘는 놓지 않는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실적 부진은 중국 매출의 80%를 차지하는 현지 진출 매스티지 브랜드의 마이너스 성장이 가장 큰 문제다. 이니스프리·라네즈·아이오페·에뛰드의 역성장이 발목을 잡았다. 이로 인해 중국 영업이익률이 전년 동기 대비 4%p 하락한 9~10%에 그쳤다.


잇달아 발표되고 있는 아모레퍼시픽그룹의 △글로벌 플랫폼과의 파트너십 & 전략적 제휴 통한 신시장 확대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광고 마케팅 및 M&A 투자 고려 등의 신전략은 투자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당분간 전사적인 수익성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메리츠증권)


반면 브랜드 노후화와 혁신제품 부재를 꼬집는 리포트도 있다. 설화수는 중장년층이 사용하는 브랜드라는 인식이 있고, 에뛰드는 자칫 유치하게 느낄 수 있는 콘셉트라는 것. 홈쇼핑 채널에서는 베리떼, 리리코스, 한율 등 구조조정이 필요한 브랜드가 산재하고, 전문점 채널에서는 고객 체험형 매장을 확대할 계획이지만 쿠션팩트처럼 소비자 트랙픽을 끌어당길 만한 제품이 부재하여 H&B스토어 대비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전형적인 포지셔닝 약화다. 중국 화장품유통 전문가 Randy Bai는 “이니스프리의 중국 진출 초기 종합쇼핑몰 단독 출점은 성공적이었다. 다만 최근의 성장률 저하는 로컬 브랜드의 입점에 따른 영향”이라며 “중소도시로의 입점을 늘려야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사업의 장단점은 누구보다도 아모레퍼시픽이 제일 잘 알고, 해결방안도 그 안에서 나와야 하는 게 맞다. 맥킨지의 컨설팅 결과에 따라서 구체적 방향이 나오겠지만, 아쉬운 것은 상황 변화를 놓쳤다는 점이다. 이런 면에서 중국통(通) 서경배 회장의 반전의 ’한 수‘에 업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서경배 회장은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중국 진출 초기부터 관여해왔다. 1992년 중국 지사 설립, 1994년 선양의 아모레 미로 기초라인 생산 시작, 1997년 라네즈 판매 등 초기 중국사업을 서성환 회장의 곁에서 지켜봤다.


1999년 선대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당시 서경배 사장은  △R&D를 통해 품질력을 향상시키고 △브랜드 파워조사를 통해 30여개 브랜드를 걸러냈다. 경쟁력 약한 브랜드는 점차 철수했고, 마케팅 자원을 강한 브랜드에 집중했다.


AMOREPACIFIC, 설화수, 헤라, 리리코스, 아이오페, 라네즈, 마몽드, 이니스프리, 에뛰드, 미쟝센의 10개 대표 주자를 선정하여, 유통채널별로 마케팅 전략을 전개했다.


중국 사업도 순풍만 있었던 건 아니다. 2005년 마몽드가 백화점과 전문점 채널을 통해 매출 호조를 이어가다 2012년 과도한 출점과 프리미엄과 중저가 사이의 애매한 포지셔닝으로 수익성이 악화됐다.


이때 서 회장은 구조조정을 단행, 새로운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꽃‘을 콘셉트로 하는 자연주의 화장품을 선언했다. 타깃은 중산층, 품질은 최고를 지향하고 가격은 합리적인 브랜드로써 실속 소비자를 겨냥했다. 이후 마몽드는 반전됐다.


필립 코틀러는 〈마켓4.0 시대 이기는 마케팅〉에서 “기업이 제품과 브랜드를 소비자의 마음속에 각인시키는 포지셔닝 전략을 최고로 여기고 활용해 왔지만, 이제는 소비자 중심의 콘텐츠를 만들어 다차원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며, 다자적인 소통을 해야 하는 ’명료성‘ 전략을 적용해야 한다”고 적었다.


또 “연결성(connecting) 이전을 레거시 시대, 이후를 뉴웨이브 시대로 구분한다. 레거시 시대의 차별화는 경쟁사에 비해 자사를 독보적으로 보이게 한다면, 뉴웨이브 시대는 경쟁사들이 쉽게 모방할 수 없는 독창성을 요구한다”고 썼다.


중국통 서경배 회장의 ’반전의 한 수‘는 시장의 우려를 기대로 바꿀 수 있을까? 그 힌트는 6년 전 마몽드 사례처럼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에 숨겨져 있다. ’죽음을 기억하라‘의 강렬한 메시지가 반전의 베이스캠프가 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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