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크림을 살 때 우리는 라벨의 숫자를 믿는다. ‘SPF 50’이라 적혀 있으면 그만큼 막아줄 거라 여긴다. 그런데 요즘 미국에서는 그 숫자가 법정에서 무너지고 있다.
라벨엔 SPF 50이라 적혀 있는데 독립 시험기관이 FDA 방식으로 다시 재보니 17밖에 안 나왔다. 선범(Sun Bum)의 미네랄 선크림이 받은 소송 내용이다. 이런 ‘표시값 vs 실측값’ 소송이 2025년 들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아래 표로 정리한 소송 트래커가 효능(SPF) 소송을 ‘현재 가장 큰 리스크’로 꼽은 이유다.
명단을 보면 브랜드 무게가 만만치 않다. 로레알(L’Oréal)의 라로슈포제 안텔리오스는 라벨 SPF 60에 독립 랩 실측 34, 에스티로더(Estée Lauder)의 클리니크 미네랄 선크림은 라벨 50에 실측 26, 에지웰(Edgewell)의 하와이안트로픽은 라벨 50에 실측 20이었다.
공통점이 보인다. 글로벌 대기업도, 미네랄(무기자차) 제형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백탁을 줄이려 처방을 가볍게 다듬은 미네랄 선크림이 실측에서 더 쉽게 무너진다.
왜 하필 미국에서 이런 소송이 터질까. 미국은 선크림을 일반의약품(OTC)으로 다루지만, 정작 판매 전에 SPF 효능 데이터를 정부에 제출하거나 사전 허가를 받는 절차가 없다. 제조사가 알아서 SPF 시험을 하고, 그 결과를 믿고 라벨에 숫자를 적는 구조다.
다시 말해 라벨의 신뢰를 검증하는 첫 관문이 ‘정부 심사’가 아니라 ‘소송’인 셈이다. 그래서 소비자단체와 기획소송 변호사들이 직접 제품을 사서 독립 랩에 시험을 맡기고, 숫자가 어긋나면 곧바로 집단소송으로 간다.

여기서 한국 업계는 남의 일처럼 볼 수 없다. 우리도 똑같은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2020년 싱가포르에서는 한 한국 화장품의 SPF50+가 실제로는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허위표시 논란이 벌어졌다. 국내에서도 ‘SPF 50으로 표시했는데 다시 재보니 19’라는 사례가 보도된 적 있다.
원인 하나가 의미심장하다. 시험은 크림 제형으로 통과해 놓고, 실제 양산은 더 묽은 로션 제형으로 바꾸면서 차단력이 떨어진 것이다. 제형이 바뀌면 SPF도 바뀐다. 이 단순한 사실을 놓치면 똑같은 소송 리스크에 그대로 노출된다.
한국 규제 당국도 고삐를 죄고 있다. 식약처는 SPF 시험을 국제 표준인 ISO 24444 시험법으로 인정하면서, 시험 성적서에 ‘언제·어디서·누가·무엇을·어떻게’ 했는지 육하원칙을 명기하도록 했다.
기능성화장품 심사 규정에는 SPF 시험법과 함께 성분의 기원·개발 경위, 효능·효과를 명시하도록 보탰다. 내수성(워터프루프) 표시도 신뢰구간 기준(50% 이상)을 충족해야 ‘내수성’·‘지속내수성’을 쓸 수 있게 정리됐다. 표시값을 뒷받침할 근거를 한층 깐깐하게 요구하는 흐름이다.
그렇다면 방어는 어떻게 할까. 답은 결국 ‘과학적 근거’다. 브랜드사가 당장 점검할 것은 분명하다.
첫째, 시험에 쓴 제형과 실제 양산 제형이 같은지 확인한다. 처방·점도·도포량이 달라졌다면 SPF를 다시 시험한다.
둘째, SPF·내수성 시험 성적서를 제품·로트별로 정리해 언제든 제시할 수 있게 관리한다.
셋째, 라벨과 상세페이지의 ‘SPF 50’, ‘워터프루프’, ‘○시간 지속’ 같은 표현이 시험 근거와 일치하는지 대조한다.
SPF는 숫자가 클수록 잘 팔리는 마케팅 언어이지만, 근거 없는 숫자는 가장 빠른 소송의 표적이 된다. 표시값과 실측값 사이의 거리가, 곧 브랜드가 감당할 리스크의 크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