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법원에 한 통의 소장이 접수됐다. 소비자 플레전트 웨인(Pleasant Wayne)이 선케어 브랜드 슈퍼굿(Supergoop)을 상대로 낸 집단소송이다. 쟁점은 단순하면서도 날카롭다.
'100% 미네랄'이라고 광고한 선크림에 사실은 화학 성분이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소장은 '(Re)setting 100% Mineral SPF 25', 'Zinc Screen 100% Mineral Lotion' 등 구체적인 제품을 짚으며, 비활성 원료에 부틸옥틸살리실레이트와 폴리메틸메타크릴레이트, 카프릴하이드록사믹애씨드 같은 합성 성분이 들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소송을 신호탄으로 미국 화장품 시장에는'숨은 화학 자외선차단제(Hidden Chemical Sunscreen)'를 둘러싼 소송의 파도가 일고 있다. 그 한가운데에 '부틸옥틸살리실레이트(Butyloctyl Salicylate, 이하 BOS)'라는 낯선 성분이 있다.

먼저 용어부터 정리한다. 자외선차단제는 크게 두 갈래다. 무기자차(미네랄)는 징크옥사이드·티타늄디옥사이드 같은 광물 성분이 자외선을 '반사·산란'시키는 방식이고, 유기자차(화학)는 분자가 자외선을 '흡수'해 열로 바꾸는 방식이다.
'100% 미네랄'은 화학 흡수제 없이 오직 광물 성분만으로 차단한다는 뜻으로, 피부 자극이 적고 환경에 안전하다는 이미지를 판다. 또 하나, 미국 FDA는 자외선을 막는 '활성 원료(Active Ingredient)'와 보습·분산 등을 맡는 '비활성 원료(Inactive Ingredient)'를 라벨에서 구분해 표기하도록 한다. 바로 이 구분의 틈에 BOS가 끼어 있다.
BOS의 정체가 문제의 핵심이다. BOS는 화학 자외선차단 성분인 옥티살레이트(Octisalate)와 사실상 쌍둥이다. 탄소 사슬 몇 개가 더 붙었을 뿐, 자외선을 실제로 흡수하는 화학 구조(살리실레이트 고리)는 동일하다. 그런데 1990년대 특허 당시 BOS는 자외선차단 필터가 아니라 '용제·피부 컨디셔닝제'로 등록됐다. 그 결과 FDA의 활성 원료 심사를 받지 않고도 비활성 원료 칸에 조용히 들어갈 수 있게 됐다.
무기자차 성분만으로는 백탁 없이 SPF 50을 맞추기가 기술적으로 매우 어렵다. 이때 BOS를 넣으면 자외선 흡수 능력이 더해져 차단 지수가 올라간다. 제조사들이 백탁을 줄이고 SPF를 끌어올리는 '부스터'로 BOS를 널리 쓰는 이유다. 미국에서만 300종이 넘는 선크림에 배합돼 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결국 라벨은 '100% 미네랄'이라 말하지만, 그 안에서 자외선을 흡수하는 화학 성분이 일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 변호사들이 이를'소비자 기만이자 그린워싱'이라 공격하는 이유다.
여기서 한국 업계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오해가 있다. 최근 "미국이 한국산 선크림을 표적으로 집단소송을 벌인다"는 식의 경고가 돈다. 그러나 사실관계는 다르다. 소송 대상은 슈퍼굿·선범(Sun Bum) 등 미국 브랜드이며, BOS는 미국 현지 제품에도 광범위하게 쓰인다.
쟁점은 '한국산'이 아니라 '100% 미네랄·합성 무첨가 클레임과 실제 성분의 불일치'다. 표적은 국적이 아니라 '말과 성분이 다른 라벨'인 것이다. K-뷰티 미네랄 선크림 상당수가 백탁 방지용으로 BOS를 쓰는 것은 사실이므로 노출은 실재하지만, 그 위험의 본질은 '한국 타깃'이 아니라 '클레임 관리 부실'에 있다.
유럽으로 눈을 돌리면 논점이 하나 더 늘어난다. EU에서는 BOS가 속한 살리실레이트 계열을 생식·발달 독성이 의심되는 물질군으로 보고 평가를 이어 왔다. 미국의 다툼이 '허위 광고'라면 유럽의 시선은 '성분 안전성' 자체를 겨눈다.
같은 성분이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규제 잣대에 동시에 노출돼 있다. 게다가 다툼은 민간소송에만 머물지 않는다.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 카운티 검찰은 앞서 슈퍼굿이 화학 선크림을 '리프 세이프'로 광고했다는 이유로 35만 달러 합의를 이끌어낸 바 있다. 사적 소송을 넘어 공권력이 클레임을 직접 들여다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자사 제품 전성분표에서 BOS 배합 여부와 함량을 확인한다.
둘째, BOS가 들어 있다면 '100% 미네랄', 'synthetic-free(합성 무첨가)', '화학 성분 무첨가' 같은 절대적 표현을 상세페이지와 패키지에서 점검한다. 절대 표현일수록 단 하나의 예외로 무너진다.
셋째, '리프 세이프(Reef-Safe)' 인증을 보유했다면 인증기관에 BOS 배합 제품의 인증 유지 여부를 즉시 확인한다. 클레임은 마케팅의 무기이지만, 근거 없는 클레임은 소송의 표적이 된다. '100% 미네랄'이라는 네 글자를 쓰기 전에, 그 네 글자를 지켜낼 수 있는지부터 자문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