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조선·청·일본의 화장문화 비교

2019.10.16 23:41:12

문화재청 ‘화협옹주의 얼굴단장 특별전’ 학술대회...부장품으로 본 ‘조선왕실의 화장품과 화장문화’
왕실 화장용기는 청+일본 수입산 사용, 성분은 화장법 따라 연분, 밀랍 등 제조 사용

조선시대 영조의 일곱 번째 딸인 화협옹주묘에서 발견된 화장용기와 유기물을 분석, 재현한 학술대회가 국립고궁박물관 주최로 경복궁 내 고궁박물관에서 16일 열렸다.


부장품으로 발굴된 화장품을 통해 18세기 화장문화를 조명한 학술대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또 같은 시기 중국, 일본, 유럽의 화장품 및 화장문화 발표도 있었다.


#1 화장용기와 내용물 온전히 발굴


먼저 2015~2017년 발굴된 경기도 남양주시 화협옹주묘에서는 화협옹주(1733-1752) 이름이 적힌 지석과 아버지 영조가 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지은 묘지석 등이 출토됐다. 특히 옹주가 생전에 사용했을 빗, 거울, 눈썹먹 등 화장도구와 화장품이 담겨있던 소형 도자기가 묶음으로 발굴되어 화제가 됐다.


화협옹주묘의 회곽함에서는 청동거울과 거울집, 멋, 빗, 청화백자합 등 총 15점의 화장 관련 부장품이 발견됐다. 현재 알려진 조선후기 왕실묘에서 백자 화장용기가 발견된 사례는 화협옹주묘를 포함해 화유옹주묘 4점, 의소세손묘 8점, 원빈홍씨묘 8점이다.


화장용 자기는 백자명기와 크기가 비슷하며, 매립 시 명기와 별도로 구분해 봉안됐다. 화장품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 점을 볼 때 옹주가 사용한 생활기로 추정된다. 백자 화장용기는 12건이며, 관인 수공업장인 사옹원 분원에서 제작된 ‘청화백자 칠보무늬 팔각호’를 제외하면 중국산 8건, 일본산 3건이다.


#2 왕실 화장용기는 대부분 수입산 사용


국립고궁박물관 곽희원 학예사는 “왕실 화장품을 담는 용기에는 화려하고 정교하기로 이름 높았던 수입자기가 선호됐을 것이며, 화장법과 성분 분석에 따르면 국내 제조가 가능해 국산 성분이 사용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당시 화장법은 기초화장과 색조화장으로 나뉜다. 기초화장법으로 로션과 같은 역할의 미안수(美顔水), 크림에 해당하는 면약(面藥), 화장유 등을 발라 피부를 곱고 촉촉하게 정리해주었다.


또 희고 옥 같은 피부를 선호해 피부결을 정돈하는 기본단계에서 꿀찌꺼기인 밀랍(蜜蠟)을 팩처럼 펴 바르고 일정시간 후에 떼어내는 방법을 사용했다. 또 궁중에 올리는 물목에 보면, 얼굴을 깨끗하고 윤택하게 하는 비누소두와 황밀, 분화장 역할의 분강갱미(粉糠粳米, 곱게 간 쌀가루) 등이 있어, 피부관리 방법을 엿볼 수 있다.


미안수는 수세미, 오이, 박 등의 줄기를 자르면 나오는 즙이나 수분을 사용해 만든다. 면약은 꿀과 자연재료를 섞어 제조하는 데, 얼굴 색을 맑고 밝게 하는 재료로 좁쌀물의 웃물(漿水), 복숭아꽃, 동아씨(冬瓜仁) 등이 함께 사용됐다.


갈색 분말이 엉켜있는 고형물은 5개의 백자합에 담겨 있었는데, 성분을 조사해보니 밀랍이 검출됐다. 꿀찌꺼기는 용도에 따라 첨가물을 다르게 섞으면 피부를 보호하고 보습효과를 주는 영양크림이 되거나 묵과 연지를 녹이는 기름으로 활용됐다. 또 밀랍과 섞은 머릿기름(참기름)으로 관자놀이와 귀 사이에 난 살적머리를 정갈하게 붙이기도 했다.


#3 기초 화장법이 발달


조선시대에 지분(脂粉)은 연지와 백분을 말한다. 분에는 미분(米粉, 쌀과 서속 가루 배합)과 연분(鉛粉, 납)을 썼다. 이 성분을 재현해 현대의 색조화장품과 비교해보니 발색력은 낮고, 지속력은 효과가 있었다. 진주를 부드럽게 갈아쓰는 진주분은 명성왕후가 사용했으며, 창백해 보였다는 기록이 있다. 반면 순종비인 윤황후는 ‘한 듯 안한 듯 분만 살짝 바르는’ 박화장을 선호했다고 한다. 


화장용기에 넣어져 있던 내용물 중 백색분, 갈색고, 적색분의 세 종류를 재현, 성분 분석과 발림성, 발색성, 세정력 등을 평가했다. 백색분에는 활석과 연백, 쌀가루 등이 들어간다. 연지는 안성에서 생산되는 호연지(胡臙脂)와 편연지(片臙脂)를 사용했다. 호연지는 면에 물들여 만들었고, 본초강목에서는 자광연지라고 한다. 갈색고는 밀랍, 유지, 연백, 활석이 추정됐다. 미안수는 익모초와 동과인을 이용했다.


한편 같은 시기 일본은 화장수, 백분, 연지 등이 사용됐다. 화장수는 처음 화장기름이었으나, 화장수로 바뀌어 팔렸다. 에도시대에는 ‘하나노츠유’가 유명하다. 무라타 타카코(폴라문화연구소)는 “백분은 유곽이나 상류층에서 얼굴의 주름을 숨기기 위해 백분을 많이 바르고, 치아는 검게 물들였다”고 소개했다. 가부키처럼 화장을 매우 두껍게 발랐다고 한다.


연지화장은 아랫입술에 연지를 짙게 발라 비단벌레 색으로 비치는 ‘검푸른 빛 연지’가 유행했다. 또 이를 검게 물들이는 흑치(黑齒)는 정조를 지키는 여성의 표시였으며, 눈썹을 미는 것은 기혼여성이라는 표시였다.


중국은 비누, 분 및 눈썹 먹, 향유 등이 사용됐다. 청나라 때는 고체비누가 나와 일상용품으로 자리잡았다. 분은 전분(녹두가루)과 백견우, 백강잠, 백연예 등 다양한 약제를 배합 제조한 옥용산(玉容散)은 서태후를 위해 제조한 처방으로 유명하다. 향택은 오늘날 헤어샴푸이자 헤어컨디셔너다. 청나라 때에는 채소에서 추출한 기름 외에 목화씨 추출 기름이 향유 원료로 사용됐다. 향료로는 계화유 외에 배초, 장미꽃 등을 사용했다. 그밖에 생화를 증류해서 얻은 향수인 화로(花露, 꽃 추출액)가 유행했다.


장완핑(상하이응용기술대학 향료향정기술 및 공학대학) 교수는 “청나라 미학은 현대 미학에 깊은 영향을 끼쳤으며, 청나라 스타일의 미용에서 유행한 원산미, 점순장(點脣妝) 같은 화장법에서부터 피부미용을 위해 사용한 장미 에센스, 계화 기름 등 재료가 현대 미장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프레드릭 르로이(로레알, 세계화장품학회학술위원장)가 ‘18세기 유럽의 화장품 혁명 시대’라는 주제로 유럽의 화장문화를 소개했다.


그렇다면 18세기 한·중·일 화장품 제조 수준은 어땠을까? 이를 소개한 기록이 있다. 서유구가 지은 임원경제지의 섬용지(贍用志)는 화장품의 분 만드는 방법을 자세히 소개하며 “국내산 분이 좋아서 중국인들도 수입해 가지만 일본 분이 가장 좋으므로 일본에서 재료를 사 와서 만들 수 있는 사람을 길러야 한다”며 당시 한·중·일 화장품을 비교했다.


또 “조선의 장인들이 만드는 물건은 들인 고생에 비해 정교하지가 않아 나라 안에 필요한 물건들이 조악하다. 이 때문에 중국을 비롯해 섬나라 일본에서까지 사들이고 있다”는 내용도 보인다. 이어서 그는 “원재료가 생산되지 않는 종자를 구입하고 제품 만드는 장인을 키울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4 개미산 용도는 트러블 케어용


발표 후 패널 토론에서는 △18세기에도 납과 수은의 유해성을 알고 있었으며, 우리나라는 특별한 날만 사용 △밀랍(오늘날 프로폴리스로 사용 등 항산, 안티에이징)의 다양한 사용 △한·중·일 삼국 모두 미백 강조 및 기초화장 발달 △왕실과 일반의 화장품 제조 생산기술의 차이 △용기 함에서 발견된 황개미 다리는 개미산(酸)을 사용 pH특성을 통한 ‘트러블 케어’용일 가능성(LG생활건강 백운기) 등 의견 교환이 있었다.


이번 화협옹주묘 발굴 도자 용기와 내용물이 온전하게 발견됨으로써 조선왕실의 화장법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또 화장품 분석 및 재현 연구는 조선 후기 왕실 화장문화의 성격과 특징을 규명할 수 있었다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권태흥 기자 thk@cn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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