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소설] 인식의 싸움 92. 해외 출장(5)

2019.01.18 17:46:05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순간 살짝 몸을 숙여 손으로 얼굴을 고이고 신팀장을 그윽히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이 은은한 촛불에 더욱 발그스레 비쳐지자, 신팀장은 그녀가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생각이 들었다. 문득 그의 심장이 요동치며 가슴이 답답한 것만 같아 그는 와인 한잔을 한번에 급히 들이켰다. 분위기에 취하고 와인에 취하고 아름다운 파리 여성에 취하는 밤이었다.
    
  그의 마음을 눈치라도 챘는지, 갑자기 미셸리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며 말을 꺼냈다.

  “참? 일행들이 있는데..., 벌써 11시가 넘었네요. 이만 호텔로 들어가 봐야 하지 않나요?”

  “네? 아…. 그렇죠. 하지만 그쪽 팀도 오늘 시장조사 끝내고 파리 야경투어를 하고 12시 다되어서 들어 온다고 했으니, 아직은 괜찮을 겁니다.” 

  그는 아직 그녀와 헤어지는 게 못내 아쉬워, 자리를 떠나겠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다른 일행들은 여행도 하고 참 좋은 것 같아요. 신팀장은 제대로 여행도 못하고 이런 구석진 곳에서 나와 같이 있어서 어쩌죠?"

  "무슨 소리에요? 제 말을 들으면 아마도 그들이 절 더 부러워 할 걸요? 파리 구경이야 나중에 또 해도, 이렇게 한밤의 파리 카페 분위기를 미셸과 함께가 아니면 어떻게 누릴 수 있겠어요?"
      
  미셸리는 와인을 한 모금 머금으며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는 모습이 신팀장의 말이 과연 그런가 하는 듯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문득 촛불이 희미하게 스며든 그녀의 얼굴은 몽롱한 환상의 세계로 신팀장을 인도하는 듯하였고, 평상시와 달리 차분한 목소리가 촉촉하게 베어 나오는 그녀의 붉은 입술은 더욱 매혹적으로만 보였다.
     
  그 때였다. 신팀장은 갑자기 앞자리로 고개를 내밀며 그녀에게 짧은 입맞춤을 하였다. 순간 돌발적인 입맞춤에 미셸리보다도 당황한 사람은 오히려 신팀장 자신이었다. 단 하루 만에 이렇게 다른 여자에게 마음이 빼앗겨 보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신팀장은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할지 어쩔줄 모르고 있다가, 침묵을 깨고 주섬주섬 말을 꺼냈다.

  “아… 저… 미셸,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순간 미셸리가 다가와 그에게 깊은 프렌치 키스를 하였다. 신팀장의 심장은 쿵쾅쿵쾅 너무도 뛰어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자신의 심장 소리와 감미로운 그녀의 입술만이 느껴졌다. 그녀의 살 내음과 함께 방금 머금은 와인 향이 그녀의 숨결을 타고 그의 후각을 자극하는 순간, 그는 어떤 격정이 가슴 속으로 치밀어 오르 뜨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무한의 시간인 것만 같았던 짙은 키스는 찰나처럼 너무도 허무하게 지나가 버렸다. 여전히 요동치는 가슴을 달래며,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원래 제 자리로 돌아 온 그는, 한 순간 쑥스러움에 그녀를 바라보지 못하겠는지 마지막 남은 한 잔의 와인을 마시고 나서야 그녀를 보았다. 반면에 미셸리는 턱에 얼굴을 괴고 그를 더욱 그윽하게 바라보며 쑥스러워 하는 그가 더욱 귀엽기만 하다는 듯이 입가에 한껏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오늘은 마법 같은 날인가 봐요. 나도 미안해요. 이러면 서로 비겼으니 우리 모두 없었던 일로 해요. 이제 그만 가봐야 할 듯하니 우리 그만 나가요. 내가 택시 잡아줄게요.”

  미셸리는 거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그녀도 당황하기는 매 마찬가지였다. 한국인이 아닌 프랑스인과 결혼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던 자신이 갑자기 한국 남성에게 이렇게까지 마음이 끌릴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자기보다 나이도 어리고 평상 시는 마냥 천진스럽다 못해 철부지 같기만 한 그가 일할 때는 확고한 자신감과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들을 만들어 나가는 모습을 보면, 마치 그가 자신보다 한참 위의 연상이자 멋진 사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지금처럼 일상에서 보면, 어린 아이 같은 귀여움에 마냥 그를 품에 안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일단 지금은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신팀장은 갑작스런 그녀의 돌변에 얼떨떨하였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자석에 끌리듯 그녀를 따라 일어나서 그녀가 잡아주는 택시에 올라탔다. 미셸은 운전수에게 호텔까지 태워다 달라고 말하며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고는 신팀장 입술에 손을 대며 말했다.

 “오흐부와(Au revoir)~!”
    
  호텔로 가는 길, 아직도 그녀의 향취와 입술의 흔적이 남아있는 듯, 신팀장은 눈을 감으며 꿈 속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신팀장은 호텔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현실로 돌아왔다. 룸메이트인 김대리는 벌써 들어와서 혼자 즐겁게 여행한 것이 오히려 약간 미안했는지 그의 눈치를 살피며 미팅이 잘되었는지 등을 물어봤지만, 그는 건성으로 응대하며 그의 말을 흘려 넘겼다. 아직도 와인의 향취와 미셸리의 달콤한 입술과 그녀의 살 내음과 함께 감각 깊이 파고드는 푸레시 플로럴 향이 온 몸에 살아 감싸주는 것만 같았다. 파리의 마지막 밤은 짙고 몽환적인 마력과 함께 지나가고 있었다.

- 계 속 -
신윤창 작가 repion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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